
- 2020년에 <전지적 독자 시점> 연출을 제안받고 마음을 정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가 2019년에 판권을 산 것으로 안다. 단행본과 웹툰이 나오기 전이었고, 웹소설도 완결되기 전이었다. 보통 제작사에서 감독에게 연출 제안을 할 때는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작사에서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 소설을 출력해서 택배로 보내줬다. 첫 페이지를 본 순간 빠져들어서 일주일 사이에 모든 분량을 다 읽어버렸다. 이야기는 너무 재밌는데 내가 알고 있는 영상문법으로 풀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그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홍수> 작업으로 인해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여러 편의 에피소드로 된 드라마나 OTT 시리즈가 아닌 한편의 장편영화로 <전지적 독자 시점>을 구현한다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영상화를 처음 논의할 시점에는 OTT 시리즈라는 옵션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다. 영화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여기던 시기였다. 게다가 회당 제작비 상한선이라는 게 있어서 에피소드 형식으로 가면 한편의 장편영화보다 퀄리티가 낮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 원작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영화화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을 텐데.
한편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이야기의 볼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이 있으니 어디까지 영화화할지 정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금호역에서 끊어버리면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만 느낌이고, 충무로역에서 대단원을 맺어야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담을 수 있다고 봤다. 영화 한편이 가져야 하는 시퀀스의 수, 공간의 수라는 게 규범화되어 있으니 그걸 헤아려보더라도 금호역은 모자라고 충무로역에서 더 가면 넘친다. 내게 더 어려운 문제는 이 영화에 실제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 실사화로 인한 이질감을 말하는 건가.
단적인 예로 소설 속 대사를 배우가 말할 때 느껴질 법한 간극이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문어체 대사를 최대한 배제하지 않나. 영화에서는 활자가 아닌 목소리로 대사가 전달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인데, 실제 사람이 말했을 때 이질적이지 않은 대사를 쓰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현대 판타지 액션 장르로 분류되지만 사실 장르는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겉표지에 가깝다. 도깨비가 나타나 인간에게 시련을 주니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면밀히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판타지’이기 때문에 자칫 이야기의 본질이 가려지거나 유치해 보일 수 있겠다는 고민이, 각본 작업을 할 때부터 사운드 믹싱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얼마나 현실적이어야 하나, 얼마나 판타지스러워야 하나. 이 두 가지 질문이 카메라를 잡을 때도, 음악을 넣을 때도 따라다녔다.
- 고민을 타개하기 위한 묘안이 있었나.
인물들에게 조금 더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지점을 만들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김독자(안효섭) 외에 이현성(신승호), 정희원(나나) 등의 과거도 지나가는 내레이션을 통해 살뜰히 챙기고 싶었다. 조심스럽지만 원작에서 조금 아쉬웠던 지점이 있다. 독자가 소위 말하는 먼치킨물에서처럼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전개를 연재물에서 볼 때는 재밌고 통쾌하지만,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 남발한다면 이야기가 진행되기 힘들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개인간의 갈등을 극복해 곡절을 뛰어넘으려는 독자의 노력과 의지가 좀더 보였으면 했다.
- 그래서 초입부터 여러 설정상의 변화를 준 건가. 일례로 원작에서와 달리 영화에서는 독자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을 쓴 작가 tls123에게 ‘이 소설은 최악’이라는 평을 남긴다. 그러자 tls123이 독자에게 결말을 다시 써보라고 한다. 작품 전체의 방향성이 달리 읽힐 수 있는 과감한 각색이다.
원작에서는 tls123이 독자에게 <멸살법>의 텍스트 파일을 전달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렇게 많은 문자를 시각적으로 노출시키기가 어렵다.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 긴 글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소설에서는 가능한 설정이지만 영화에서 구현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설정이다. 그리고 독자가 <멸살법>을 이미 수차례 읽었다면 텍스트 파일 없이도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또한 tls123의 tls를 한글로 타이핑하면 ‘신’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해당 시점에서는 이 작가를 신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도입부의 변화는 신이 내게 해줄 법한 말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 원작의 주요 인물인 한수영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가 원작에 한수영이 등장하기 이전 시점의 줄거리를 다루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도 개봉 전부터 여러 추측이 있었다.
사실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해 받는 질문의 근간이 모두 원작과의 차이점에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각본을 쓰던 시기보다 원작이 더 많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 지금까지는 내가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원작이 있는 가운데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거기에서 오는 이점도 있지만 감독으로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 때의 입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의 초점이 각색에만 맞춰지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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