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Os0QsoLoR4?si=XASrm8HC3XYomoKK
유노윤호가 배운 것
좋은 건 너만 알기. 슬픔도 너만 갖기. 일희일비 않기. 유노윤호가 세 번의 레슨을 들려주기까지는 20년 넘는 배움과 도전이 있었다. 디즈니+ <파인: 촌뜨기들>을 통해 목포 건달로 돌아온 유노윤호는 말한다. 다시 한번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야 할 때라고. 마침내 도착한 유노윤호의 네 번째 레슨을 듣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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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가 공개될 때면 <파인: 촌뜨기들> 첫 방영을 했을 텐데요. 직접 촬영한 입장에서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면요?
<파인: 촌뜨기들>은 가장 밑바닥 사람들의 욕망과 야망을 그려요. ‘인간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게 포인트죠.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아서 다양한 사투리를 듣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시대적으로는 1970년대의 풍경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고요.
목포 출신의 건달 ‘장벌구’를 맡았죠. 혹시 캐스팅 이유에 대해서도 들으셨어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좋은 의미로 배우 정윤호의 모습을 망가뜨리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때마침 저도 그런 갈증이 있었고요. 기존 작품에서 차분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주로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전에 없던 캐릭터를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다행히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께서 “윤호가 알을 깼다”고 말씀해주셔서 안도했습니다.
<파인: 촌뜨기들>에는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잖아요. 거기서 오는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아유 컸죠. 그래서 처음 대본 리딩하는 날 대사를 통째로 외워서 갔어요.
원래 대본을 잘 외우는 편이에요?
딱히 암기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 그만큼 절실했어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앞에서 주눅 들고 싶지 않았고요. 모든 촬영이 제게는 공부였어요. 현장에서는 대본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촬영했거든요. 류승룡 선배님, 김의성 선배님, 우현 선배님이 애드리브로 그 흐름을 이어 나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큰 공부가 됐어요. 덕분에 저도 벌구 역할에 더 빠져들 수 있었고요.
연기자 입장에서 장벌구가 ‘이런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하는 점도 있었을 텐데요.
캐릭터 소개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겉멋만 잔뜩 든 벌구.’ 사실 벌구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사정이 있어요. 평생 동네에서 망나니 취급을 받아왔거든요. 벌구도 나름대로 ‘언젠가 기어코 성공해서 한번 보여준다’ 하는 심지가 있어요. 그런 벌구의 마음이 잘 드러났으면 했죠.
벌구의 마음이 어느 정도 공감되기도 했겠어요. 윤호 님도 상경해서 고생하던 시절이 있으니까.
말씀하신 부분에서 ‘애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무대에 오르는 일을 하고 있지만, 분명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가 언젠가는 꼭 한 번 보여주리라’ 하는 절실함이 있어요. 연기자로서 여러 작품을 보여드렸지만, ‘정윤호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생각하게 만들고 싶죠. 그런 점에서 <파인: 촌뜨기들>이 제게는 필요한 도전이었어요.
촬영 기간 내내 목포 사투리 코칭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사실 코칭보다 대사 연습을 하면서 감정 상태를 체크했어요. 똑같은 단어라도 목포 뉘앙스를 더 진하게 녹이면, 전달되는 감정도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사투리는 감정이 잘 드러나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좀 더 목포 현지스러우면서 1970년대다운 말투를 계속 연구했죠. 더불어 거친 모습으로만 느껴지진 않았으면 했어요. 벌구가 툴툴거리는 와중에도 시키면 할 건 하는,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거든요. 좀 더 입체적인 인물이 되려면 나름의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투리 선생님은 누구였어요?
지금도 전라도에 살고 있는 제 친구들.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코칭을 받았어요. 같이 출연한 배우들도 큰 도움이 됐어요. 이번 작품에 ‘벌구 3인방’이 있어요. ‘벌구’ ‘필만’ ‘도훈’인데, 실제로 세 배우 모두 광주 출신에 나이도 같았거든요. 그 친밀감이 작품에도 잘 녹아들었1970년대 전라도 사투리를 써야 해서 부모님께도 여쭤봤겠네요.
그럼요. 부모님 세대와 저희 세대가 쓴 사투리는 조금 다르잖아요. 제가 뱉는 대사가 부모님 귀에도 어색한 점은 없는지 여쭤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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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요즘 유노윤호의 첫 번째 레슨(‘Thank U’)이 뒤늦게 화제입니다. 4년 만의 역주행인데, 어떠셨어요?
처음 소식 들었을 때 일본에 있었거든요. 얼떨떨했죠. 지금도 얼떨떨해요.(웃음) 룩삼이라는 분 덕분에 ‘Thank U’가 화제가 됐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어요. 정말 감사하죠.
두 분이 직접 만나거나 연락한 적은 없으시죠?
네. 친분이 없던 사이라 이번 영상이 더 감사했죠. 만날 자리를 마련하려고 서로 이야기 중이에요. 아참, 간혹 ‘Thank U’가 이번 드라마 홍보 때문에 다시 뜬 줄 아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전혀 아닙니다.(웃음)
‘Thank U’ 작업을 하던 당시 이야기도 궁금했어요.
한동안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는데, 그걸 음악으로 담아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가사도 사실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예요. 자신을 고찰하고자 하는 내용이죠.
가사를 처음 받았을 때는 어땠나요?
작사는 유영진 프로듀서님이 맡아주셨어요. 평소 저를 워낙 잘 아는 분이었고, 작업하면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요. 사실 ‘첫 번째 레슨’ ’두 번째 레슨’은 저조차 가볍게 보일 수 있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진중한 분위기로 담아내면 좋겠다고 해주셨고, 저도 동의했어요. 뮤직비디오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했고, 최대한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전할 수 있는 비주얼을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우연히 운 좋게 나온 작품이 아니었네요. 사실 유노윤호는 뮤지션으로서 거의 모든 걸 이룬 것처럼 보이거든요. 반대로 배우 정윤호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한동안 저는 배우로서 섣부르게 시작했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몰라도 너무 모를 때 덜컥 뛰어든 거죠. 하지만 그때의 모습도 결국 제 일부잖아요. 후회는 안 하려고 해요. 목표는 간단해요.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는 것. 하지만 연기는 목표 달성을 차치하더라도 즐거운 일이에요. 배우는 사람을 공부하는 직업이잖아요. 연기할 때만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연기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죠. 욕심나는 역할도 있나요? 가수와는 정반대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조선시대 속 저승사자여도 좋고, 판타지 세계의 악당이어도 좋아요. 분명 그 역할을 해내면서 얻는 에너지가 있을 거예요. 거기서 얻은 에너지로 다시 앨범을 내고 싶어요. 그렇게 배우와 가수로서 가진 에너지가 선순환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저는 작품이 끝나면 그저 누워 있기만 할 것 같은데 정반대네요. 유노윤호에게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은 날’은 없는 겁니까?
있죠. 하지만 이런 생각이 앞서요. ‘내가 앞으로 불태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는 타이밍이 있잖아요. 그 타이밍이라는 게 사정을 헤아려주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증명할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승부를 걸 준비는 늘 되어 있어야 하고요.
번아웃이 올 때는 없었나요?
데뷔 20년 됐을 때. 그때 처음으로 허탈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돌이켜보면 번아웃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20년 동안 제 안에서 꺼낼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직 남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동방신기로서 워낙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 정윤호 개인의 역량은 성장이 멈춘 거죠. 허탈하면서도 다시 도전해야 될 이유를 찾았달까요. 그래서 지금은 이 생각에 꽂혀 있어요.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유노윤호도 여전히 그 고민을 하는 거네요. 내가 잘하는 건 뭘까.
그럼요. 언젠가 플레이어를 그만두고, 다른 누군가를 위한 서포터로 남을 텐데 그때는 어떤 걸 잘할 수 있을까?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 역할이 주어질 텐데, 그때를 위한 준비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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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대에 오르는 일을 하고 있지만, 분명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가 언젠가는 꼭 한 번 보여주리라’ 하는 절실함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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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절호의 타이밍은 반드시 온다고 확신해요.
중간에 힘들면 쉬어도 돼요.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또 그렇게 돌아오려면 스스로를 잘 돌봐야겠죠.”
올해로 데뷔 22년 차입니다. 지금의 유노윤호 정도면 하고 싶은 일만 하고도 살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여전히 ‘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면요?
춤으로 다시 한번 증명해보고 싶어요. 한동안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음 춤을 추던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데, 저는 재즈로 처음 춤을 배웠어요. 지금의 유노윤호는 ‘늘 파워풀한 춤추는 뮤지션’으로 굳어졌지만 시작은 달랐거든요. 요즘 주목받는 뉴잭스윙, 힙합은 어린 시절 저한테 가장 익숙한 장르였고요. 다시 한번 그 주기가 돌아왔으니, 내실을 다져서 ‘유노윤호는 원래 퍼포머였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가수로서, 배우로서 저 자신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려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 그게 가장 큰 숙제예요.
조금 유치한 질문인데요. 유노윤호는 놀 때 뭐 하나요? 아니, 놀긴 노나요?
저 요새 잘 놀아요. 나름 여행도 많이 가고요. 요즘에는 영화 많이 봅니다. 장편영화,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가리지 않고 두루 보는데요.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묵직한 분위기의 영화도 좋아하고요.
요즘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나요?
나를 지탱하는 게 뭘까. 한동안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답은 간단하더라고요. 저 무대가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거든요. 이것만큼 충분한 이유도 없죠.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주변의 많은 걸 모두 품으려다 보니 제 그릇을 넘치는 일들이 생겼던 거죠. 이제는 그냥 제 페이스대로 가려고요.
아마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유노윤호도 후회할 때가 있습니까?
있죠. 뭐 어떡해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벌어진 일인데. 후회도 습관이더라고요. 후회하지 않아 버릇하면 후회 안 할 수 있어요.
유노윤호가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도 궁금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 길을 계속 가는 사람. 인생이 길잖아요.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 보면 분명 주목받고 해명할 수 있는 타이밍이 주어지거든요. 내 속이야기는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주변의 공감을 바라는 게 사치임을 깨달았어요. 다만 꾸준함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그걸 믿고 자기 길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멋있죠.
그런 점에서 칭찬 타임 가져볼까요.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을 고른다면?
생각보다 많은데요.(웃음) 올해 제 생일날 아버지께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처음 해본 것. 저희 부자 사이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거든요. 어머니한테는 장난 섞인 말투로 한 적은 있지만, 아버지한테는 처음이었어요. 문득 아버지가 지금 제 나이 때의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아버지 덕분에 제가 있습니다 말씀드렸죠.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로부터 답장은 왔나요?
답장 안 왔어요.(웃음) 카톡 답장은 없었고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해주셨죠. 고맙다고.
마지막 질문입니다. ‘좋은 건 너만 알기’ ‘슬픔도 너만 갖기’ ‘일희일비 않기’ 다음으로, 네 번째 레슨을 들려준다면?
버티고 또 버티기. 저는 같은 일을 20년 했는데 여전히 어렵고 힘들거든요. 그런데 버티니까 돌아오는 것들이 분명 있더라고요. ‘Thank U’가 이런 식으로 주목받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누구에게나 절호의 타이밍은 반드시 온다고 확신해요. 중간에 힘들면 쉬어도 돼요.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또 그렇게 돌아오려면 스스로를 잘 돌봐야겠죠.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면 가장 밝은 해가 떠오른대요. 제가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한 말입니다. 그러니 버티고 또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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