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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K팝이 다시 통해
K팝 데몬 헌터스가 증명한 IP확장 공식
콘텐츠 업계 "기회이자 위기"[커버스토리 : K팝 데몬 헌터스 열풍 ②-산업적 의미]

K팝 데몬 헌터스 스틸샷/넷플릭스
“K컬처를 한국만의 것으로 인식하기보다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있다.”
“K콘텐츠 제작 방식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는 전환점이 됐다.”
한국 기업이 만들지 않은 K팝 애니메이션이 글로벌 차트를 휩쓸자 나온 평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컬처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의 확장성과 K콘텐츠의 새로운 성공공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내 엔터 업계에 기회와 숙제를 동시에 던졌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미국 스포티파이와 빌보드차트를 점령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은 K팝 팬덤 확장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적 코어 팬덤을 넘어 대중 팬덤까지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국내 엔터사들의 공연·MD 매출 성장성을 높이는 동시에 향후 글로벌 투어 수요 기반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유혁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니메이션과 OST가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동시에 흥행한다는 것은 K팝 장르의 침투율이 확대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고 결국 팬덤 확대로 이어지면서 시장기대치를 상회하는 공연·MD 실적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수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흥행이 K팝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며 “K팝 색이 강한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요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콘서트 투어에 대한 잠재 수요 확대와 함께 공연·MD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상장 엔터사들의 실적 가시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등 주류 시장에서 K팝 수요층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K팝이 여전히 서구권에서 완전한 주류문화로 보기엔 한계가 있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전형적인 K팝 음악이 미국·영국 차트 상위권에 오른 건 글로벌 수요층이 분명하다는 걸 보여준다”며 “특히 이지리스닝이 아닌 전형적인 K팝으로는 어렵다고 여겨졌던 미국 시장에 다시 진입할 실마리를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뉴진스가 ‘이지리스닝’을 들고나오기 전까지 K팝 그룹의 성공공식은 정해져 있었다. K팝이라고 하면 콘셉트가 확실한 세계관, 기승전결이 확실한 음악 진행 코드, 다 같이 각을 맞춘 군무, 노래 중간중간 나오는 랩을 떠올릴 수 있다.
블랙핑크·에스파·(여자)아이들·아이브 등 3~4세대 걸그룹은 남성에게 어필하는 대신 완벽한 무대와 화려한 스타일링으로 무장해 여성 팬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뉴진스 이후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지리스닝이 대세가 됐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먹혀들었다.
이후 기획사들은 전형적인 K팝에서 탈출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다. 기획사들도 전형적인 K팝 틀을 벗어나려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서구권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던 전형적 K팝 공식을 오히려 그대로 따르면서 성공을 거뒀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숙제는 K팝의 전형적인 코드를 탈피하고 ‘새로움’을 찾는 것이었는데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성공은 이 공식을 깨고 ‘K팝의 전형 모델’로 세계 무대를 장악한 것”이라며 “서사를 갖춘 버추얼 아이돌이 성공을 거뒀다는 것 역시 큰 변화”라고 말했다.

K팝 데몬 헌터스 스틸샷./넷플릭스
‘한국 기업이 만들지 않은 K팝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콘텐츠 업계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보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되고 배급하는 콘텐츠가 넷플릭스만큼의 파급력과 수익 구조를 내기에는 현실의 벽이 있다는 점에서다. 이번 성공은 넷플릭스가 가진 막강한 자본력과 글로벌 유통망 덕분이었다. 일본 자본이 투입된 미국 제작사와 글로벌 OTT가 K컬처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흥행시키면서 ‘K’의 정체성 역시 다시 정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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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제작 인력과 콘텐츠의 소재, 제작되는 장소, 자금의 출처, 시청자(소비자)를 국적으로만 나눌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시도하지 못했던 장르에서 새로운 시장을 겨냥할 수 있는 ‘K콘텐츠 열풍’이 지속되는 만큼 더욱 성숙한 제작 준비 과정을 통해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중요하고 긴장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유물이었던 ‘K’ 소재에 대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IP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더디플로맷(The Diplomat)은 지난 7월 2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산업을 촉진하면서도 위협하는 양날의 검’ 기사에서 “넷플릭스는 K콘텐츠의 세계화를 견인한 주역인 동시에 산업 구조를 흔드는 리스크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킹덤’, ‘오징어 게임’, ‘스위트홈’ 등 글로벌 히트작을 배출하며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인터내셔널 쇼케이스’를 통해 전체 가입자의 80% 이상이 최소 한 편 이상의 한국 콘텐츠를 시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더디플로맷은 “이 관계는 점차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넷플릭스의 초기 투자가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기존 콘텐츠 제작·유통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문제로 콘텐츠 제작비 급등을 거론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기분은 한국이 내고 돈은 미국과 일본이 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직접적인 엔터테인먼트 수익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 배치된 섬세한 문화적 요소들이 한국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소프트파워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여전히 열악한 현실과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실질적 기획 권한이 플랫폼에 집중되면서 제작사가 편성권·홍보권·지분구조 등에서 점점 종속적 지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2025 콘텐츠산업포럼에서 “K콘텐츠 산업이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과 구조적 경쟁력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방송사 중심의 유통망이 무너지면서 글로벌 시장에 직접 콘텐츠를 유통할 길이 막혔고 결국 넷플릭스·디즈니+ 등 글로벌 OTT에 의존하는 구조로 전락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이제는 ‘어떻게 잘 만들까’에서 나아가 ‘어떻게 잘 팔까’를 고민해야 한다”며 유통 채널 다각화와 IP 기반 수익모델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