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성년 성범죄로 수감 중 사망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과거 음란한 내용을 담은 생일 축하 편지를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보도했다. 그동안 트럼프는 한때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어왔다. 트럼프는 “이 편지는 가짜다. WSJ는 역겨운 지라시”라면서 소송 방침을 밝혔지만, 이 문제로 트럼프 지지층까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WSJ는 “2003년 엡스타인의 친구들이 그의 50번째 생일 축하 앨범을 만들기 위해 외설적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이 트럼프”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법무부는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 착취 범죄를 도운 전 여자 친구 길레인 맥스웰이 만든 이 앨범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WSJ는 “트럼프의 편지에는 여러 줄의 타이핑된 글과 굵은 펜으로 그려진 나체 여성의 윤곽이 있다”며 “트럼프의 서명이 (여성 윤곽) 허리 아랫부분에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편지는 ‘생일 축하해. 하루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비밀이 되기를’이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보도가 나오자 소셜미디어에 반박 글을 올렸다. 그는 “이 편지는 내가 말하는 방식이 아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서 WSJ와 그 소유주 루퍼트 머독을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밝혔다. 또 “엡스타인 관련 조작극에 트럼프와 관련한 진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미 수년 전에 급진 좌파 광인들이 폭로했을 것”이라고 했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125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뒤 2019년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트럼프뿐 아니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이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미국에선 엡스타인 수사 기록을 공개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작년 대선 당시 “공개하겠다”는 입장과 달리, 최근엔 “시간 낭비”라며 공개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트럼프는 이날 엡스타인 사건의 ‘대배심 증언’ 공개를 지시했다. 대배심 증언은 검찰의 수사 기록은 아니지만, 사건 증인·피해자들이 배심원 앞에서 비공개로 진술한 내용이다.
엡스타인 문제를 두고,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강성 지지자인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이 사건과 관련해 트럼프가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는 충성심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매가’ 모자를 태우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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