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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천연기념물' 산양 1022마리 떼죽음 사건의 충격적 진실 (우리나라,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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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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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부터 폭설로 산양이 죽고 있다는 기사가 나기 시작했다. 3월부터는 ‘떼죽음’, ‘공동묘지’라는 표현과 함께 죽은 산양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언론에서 문제를 지적하자 그제야 정부는 대책 회의를 마련했다. 국시모는 1월에 울타리를 개방했다면 폭설로 인한 고립사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았다.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떼죽음이라 할 만했다. 1022. 지난해 겨울 죽은 산양의 숫자다. 한국에 사는 산양이 2000마리쯤 된다고 했으니 2024년 한 해에만 그 종의 절반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양, 그들이 도로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는 건 살길을 찾아서, 살길이 이것밖에 없어서다.

산양은 겨울이면 눈이 온다는 걸 안다. 가을이 되면 배를 가득 채우고 겨울 준비를 한다. 눈이 오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버틴다. 그러면 곧 눈이 녹고 봄이 온다. 그렇게 200만 년을 살아왔다. 문제는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때늦게 오는 것. 폭설에 도로로 내려온 산양들은 로드킬로 또는 탈진해 목숨을 잃는다. 겨울은 산에 사는 동물들에게 힘든 계절이다. 눈에 갇혀서 혹은 굶어서 죽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매년 겨울이면 산양 20여 마리가 죽었다.

 

2024년은 완전히 달랐다. 마을 주민들은 산양을 너무 자주 봤다. 도로를 서성이는 산양과 길게 가로막힌 울타리 앞에서 죽은 산양을. 힘들어서, 또 굶어서 죽은 산양들은 어리거나 나이가 많았다. 폭설로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산양, 울타리 앞에서 길을 잃고 어찌할 줄 모르는 산양의 모습이 기후위기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우리의 미래가 될까 두려웠다.

산양이 아직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 생의 흔적을 붙잡고 싶었다.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산양들이 갇히지도 죽지도 않았으면 했다. 울타리, 그 죽음의 경계를 걷어치웠으면 했다.

울타리라는 생의 막다른 길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 때문에 산양이 산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2019년 11월 3000km 길이의 울타리 설치가 시작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 방역을 위해서였다. ASF는 2019년 9월 경기 파주의 한 농가에서 최초 발생했다. 확산을 막기 위해 두 달 동안 근처 농가의 사육돼지 45만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돼지를 땅에 묻는 동안에도 바이러스는 농가에서 농가로, 또 야생으로 퍼졌다.

10월 경기 연천에서 멧돼지가 감염된 것이 확인됐다. 사육돼지를 살처분하고 멧돼지를 포획하는 동안 정부는 파주부터 경북 영덕까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울타리 3000km를 설치했다(환경부는 광역울타리 1800km, 농가밀집단지 차단울타리 113km를 설치했고, 각 시군에서 1, 2차 울타리를 설치했다). 총 사업비 1770억 원에 매년 보수관리비용으로 50억 원이 드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3000km. 남한 국토의 둘레가 4500km라고 하니 국토의 2/3가 철제 울타리로 가로막힌 셈이다. 그중 1100km가 설악산국립공원 경계지역과 화천과 양구, 인제 등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강원지역, 그러니까 산양의 서식지로 알려진 곳에 설치됐다. ASF 차단 울타리가 산양 떼죽음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1965년에도 폭설로 산양 3000마리가 죽었다는 증언(원병휘, <한국동식물도감>, 1967)이 있다. 이번 떼죽음도 폭설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한 해 20여 마리가 죽던 산양의 수가 4배 늘어 100마리가 죽은 것은 2020년 ASF 차단 울타리를 친 직후였다. 그러다 2024년 겨울, 50배 가까이 죽은 것이다.

산양들의 사체가 발견된 곳을 따져보면 추측은 확신이 된다. 설악산국립공원 근처에서 발견된 곳 중 48.5%는 ASF 울타리 영향권이다. 또한 산양이 가장 많이 죽은 화천과 양구는 광역 울타리로 한 번, 지자체에서 설치한 1차, 2차 울타리로 세 번이나 집중 설치됐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출입 통제선과 가까워 군 철책 울타리에 이미 가로막힌 곳이다.

이전에도 산양들이 사는 곳은 군 철책과 농막 울타리, 고속도로와 탐방로 등으로 이미 쪼개질대로 쪼개져 있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하 국시모)의 정인철 국장은 산양, 특히 설악산 산양들은 이미 고립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감옥처럼 완전히 폐쇄된 곳에 울타리까지 친 거예요. 지도를 보면, 국립공원에 미시령 도로와 한계령 도로가 있잖아요. 그 사이에는 탐방로가 수십 개 있어요. 설악산 산양들은 이미 고립된 서식지에서 진짜 근근이 살던 동물이에요. 직접 보면 울타리가 감옥이라는 걸 단번에 느껴요. 울타리에 갇혀서 털이 다 젖어 있어요. 탈진한 거죠. (산으로 가고 싶어서) 코로 울타리를 문지르고, 도로에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계속 좌우를 두리번거려요. 그게 너무 기가 찼어요. 이런 모습들이 저에게는 산양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져요. 많이 지쳤다, 위험하다 이런 메시지요."

그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가 멀다고 강원도로 갔다. 올겨울, 정 국장은 화천, 양구지역에서 새끼 산양을 보았다. '긍정적 신호'였다. 많이 죽었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설악산은 달랐다. 미시령 옛길에서도 한계령에서도, 산양의 흔적조차 보지 못했다. 단절되고 고립된 삶, 산양 서식지에 들어선 ASF 울타리는 '죽음의 선'이었다.

멧돼지가 죽으면 산양도 죽는다

정부의 방역 목표는 확실했다. 확산 방지와 청정국 유지, 그리고 삼겹살값. ASF 차단 울타리는 일단 야생동물의 접촉을 차단한다(이정연, "ASF 차단울타리 '실효성' 논란…'발병원인 알 수 없어 우선 막는 게 최선'", <아시아투데이>, 2024. 5. 3.)는 이유로 발병 직후 빠르게 설치됐다. 국시모는 처음부터 울타리 문제를 지적했지만, 먹거리와 양돈업이 최우선이라는 정부 입장은 한결같았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나 산양과 멧돼지의 목숨은 삼겹살 가격 앞에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나 삼겹살이 아니라면 ASF는 인간에게 문제 될 게 없다.

ASF에 감염된 사육돼지와 감염될지 모를 사육돼지 38만여 마리(2019년부터 2021년 11월)가 살처분됐다. 바이러스를 전파할지도 모를 멧돼지 45만여 마리(2019년부터 2024년 5월)가 포획됐다. 확산은 막지 못했다. 돼지를 살처분하고 울타리를 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치사율 100%에 달하는 법정 제1종 가축전염병 ASF는 최초 발생부터 현재까지 위기관리 대응 단계 '심각단계'이다.

"정부는 울타리 말고는 해법을 못 찾은 거죠. 사실 해법도 아니지만요. ASF 확산 예상 경로에 계속 울타리치고 돼지를 살처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 못 해요. 이미 다 뚫렸잖아요."

정 국장은 울타리 앞에서 죽은 멧돼지보다 울타리를 '자유자재로 뛰어넘는' 걸 더 많이 보았다. 경사진 곳, 흙이 쌓인 곳을 밟고 울타리를 넘었고, 땅을 파서 어디든 돌아다녔다. 강도, 바다도 잘 타는 동물, 멧돼지는 '마음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동물이었다. 방역을 이유로 환경영향평가조차 없이 울타리를 설치했지만, 정 국장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으로 봤다.

유럽과 러시아, 아시아의 경우 모두 멧돼지가 감염원인 경우는 없었다. 오염된 물과 잔반사료, 또 사육돼지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고, 동유럽의 ASF 모니터링에 참가한 전문가도 전파 원인을 두고 "바이러스는 주로 도로와 운송 경로를 따라 확산되었으며 이는 100% 인간에 의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멧돼지가 ASF 전파의 직접 매개체가 아니라고 보았고 오히려 농장출입자 등에 의해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농림축산식품부 방역백서, 2022)하고 있다.

야생동물의 접촉을 막기 위한 ASF 차단 울타리는 애초에 그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감염병을 '박멸하기 위해 멧돼지 한 종을 대규모로 몰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용납할 수 없으며, 실현 불가능한 작업'(박용목, '멧돼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생태와 차단방역', 국립생태원, 2020)이었다. 멧돼지 역시 피해 동물로 보는 이유이다.

"멧돼지 포획 보상금만 700억이 넘어요. 포획이 아예 산업이 됐어요. 사냥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야생동물을 잡아서 죽이는 걸 당연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사회의 방향성이에요. 그렇게 되도록 결정하고 합리화하는 게 만행인 거죠."

애꿎은 동물들이 죽어갔다. 정부도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된 건 산양이 떼죽음 당하고 난 뒤였다. 산양은 멸종위기종 1종이며 천연기념물로 국가유산청과 환경부의 보호를 받게 돼있다. 천연기념물이, 그것도 1000마리 넘게 죽고 나서야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울타리에 갇혀 죽은 건 산양만이 아니다.

멸종위기종도 천연기념물도 아닌 야생동물들, 고라니와 노루, 오소리와 담비는 얼마나 죽었는지 숫자로도 남지 않았고 멧돼지의 죽음은 엽사의 포상금으로 또 농림부의 성과로 기록됐다. 멸종위기종도 천연기념물도 아니지만 그들 역시 생태계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니, 동물들이 생태계 자체이다.

  까만 그늘막에 뿔이 걸렸다. 이제는 쓰지 않는 버려진 그늘막 작은 구멍에도 누군가 걸리고 갇혀서, 서서히 죽어간다.
ⓒ 정윤영
산양 떼죽음과 울타리와의 연관성이 밝혀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울타리를 부분 개방하기로 했다. 정부는 울타리가 ASF 확산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생태 단절과 주민 불편, 사회적 비용 등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데 이견이 없었고 울타리 철거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사실 2022년에 진행한 환경부의 '야생멧돼지 ASF 차단 울타리 실태조사 및 효율적 관리 방안 마련 연구'에서 울타리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이미 드러났다. 그걸 알고도 일 년도 더 지난 뒤에야 울타리를 시범적으로 부분 개방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개방 구간은 전체 울타리의 0.006%. 산양을 살리기 위한 개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부분 개방한 울타리에 설치한 카메라에 찍힌 산양의 행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양은 울타리 앞에서 머뭇거렸고 울타리를 피해 몸을 돌리거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 울타리가 없었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정 국장은 산양의 스트레스로 이해한다.

"0.006% 개방했다고 산양이 알고 찾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산양은 살던 곳에만 살거든요. 부분 개방은 의미가 없어요. 울타리 몇 군데 개방해 놓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죠."

울타리는 어찌 됐든 철거될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다만 연구를 이유로 철거가 미뤄지는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한 해 절반이 떼죽음 당한 산양들은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멸종위기종 1종에게 남은 시간은 얼만큼일까. 우리도 산양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마음이 급하다. 국시모는 양돈 농가가 거의 없는 설악산 국립공원과 백두대간 같은 보호지역부터 산양 주 서식지를 단계적으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올해는 반드시 철거 결정을 해야 돼요. 이제까지는 연구 결과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넘어갔지만 올해는 넘기면 안 돼요. 지난 9월에 (정부는) 산양 주 서식지부터 우선적으로 철거하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지금은 결정을 해야 하고요, 결정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데도 계속 시간을 끈다면 그건 직무 유기죠."

 

https://v.daum.net/v/2025071616330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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