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10년 넘게 연재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멸살법)을 완결까지 읽은 유일한 독자 김독자(안효섭 분)가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분)과 동료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모든 이야기는 '멸살법' 작가에게 보낸 메시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작가님, 이 소설은 최악입니다."
극중 김독자는 소설 주인공 유중혁의 결정을 의심하고, 그에 저항하면서 '멸살법'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주인공을 지지하던 이유를 잃고 결말에 의문을 품는 것. 이 의문은 작가를 향한 항의로 이어진다. 그러자 작가는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에게 새로운 결말을 쓸 기회 혹은 재앙을 선사한다. 자신의 과한 응원이 작가에게 작은 생채기를 남기진 않을까 고민하며 '멸살법'의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한 원작 속 김독자와 정반대에 놓인 출발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볼수록 소설 속 김독자가 아닌 영화 속 김독자의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화는 '신과 함께' 시리즈로 지식재산권(IP) 활용 영화의 대박을 터트린 리얼라이즈픽쳐스가 맡았다.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이 시리즈 최초 쌍천만을 달성한 바 있는 만큼 노하우와 자신감을 갖췄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영화가 원작팬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때마다 "믿고 봐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나는 이 게임을 해봤어요"라고 외치는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처럼 자신감의 원천 근거는 충분하지만, 그 결과물이 뒤어어 나오는 대사 "이러다 정말 다 죽어요"를 피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원작의 뼈만 남겨 새 살을 덮은 작품이기 때문.
원작은 비교적 쉬운 서사에 역사 및 신화 모티브, 철학적 독백을 버무려 '읽는 재미'를 선사해 왔다.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독백과 모티브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쾌감이 컸다. 하지만 영화는 서사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삭제됐다. 독백은 설명부만 남았고 모티브는 모두 사라졌다.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내용을 담아내기 위한 결정이겠으나, 원작이 인기를 얻은 근본적인 이유가 뿌리째 뽑혔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개봉에 앞서 논란이 된 이지혜(지수 분)의 이순신 설정 삭제 또한 배후성(각 인물을 후원하는 성좌) 설명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로 읽힌다. 원작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이 발골된 영화는 '스타 마케팅'을 제외하면 그냥 저냥 평범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영화는 원작 팬들을 배반하고 오로지 이야기만 취하고자 한 것일까? 김병우 감독은 지난 15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에 여러 좋은 가치들이 있지만, '함께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김독자가 자신이 아는 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 뾰족하게 와닿았다. 장르 영화는 관객분들이 즐겁게 즐기고 극장을 떠나면 그만인 영화지만, 이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가 가진 의미를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메시지를 위해 부차적인 것들을 제외했다는 이야기다.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있는 영상 매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병우 감독의 항변과 달리 영화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유중혁의 말을 비판한다면서 "김독자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연출을 반복한다. 영상매체로서 웹소설, 웹툰에서 허용되는 비윤리적 장면들을 어떻게 씹어 삼키고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무하고 김독자의 성장 재료가 되는 '고통'만 소비한다. 폭행당하는 노인, 동급생에게 괴롭힘당하는 학생, 길게 늘어선 시체들, 서로를 물어뜯는 생존자들 등이 나열될수록 김독자는 자신이 그토록 바꾸고 싶었던 유중혁이 되고 만다. 약한 자와 죽은 자를 발판 삼은 '함께'가 어떻게 진정성을 지닐 수 있을까. 공통의 적을 물리친 인물들이 벅차오르는 음악을 배경 삼아 화면 중앙에 나란히 서는 장면은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함께'가 아니다.
https://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3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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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중학교 때부터 보기 시작한 웹소설 '멸살법'(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작가 tls123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주인공 김독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김독자는 어린 시절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 어느 큰 회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한 그는 계약직 근무를 마무리하는 날, tls123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김독자가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결말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는 모두가 죽고 주인공 혼자 살아남은 결말에 허망함을 느꼈고, 작가에게 "이 소설은 최악이다"라며 불만을 표출한다. 이는 학창 시절 일진들의 협박 앞에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던 자신의 트라우마와도 연결된 불쾌감이었다. 지난 몇 년간 '멸살법'은 독자는 김독자가 유일했다. tls123은 소설의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에게 답장을 해온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써보시죠."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21/000837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