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에선 ‘동시 배틀’이 벌어진다. 출연자들이 번갈아 프리스타일 댄스를 추고 판정이 타이가 뜨면 춤을 동시에 춘다. 두 명의 댄서는 저지들 눈에 띄기 위해 저지 석 앞으로 이동해 팔다리를 흔든다. 상대의 몸을 가리는 새치기가 오가고, 자리싸움을 하는 통에 신체접촉이 일어난다. 아수라장이다. 실제 스트릿 대회에서는 왁킹 같은 특정 장르를 제외하고는 동시 배틀 같은 게 없다. 이건 <스우파> 시리즈의 유구한 전통이자 특유의 정체성이다. 선택을 받고 싶으면 밑바닥까지 보여주며 발버둥쳐라. 내 눈에는 이 ‘제도’가 요구하는 바가 그 외엔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스우파>는 주요 출연자들이 제작진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갔다. 공전의 히트를 한 시즌1에서 소위 ‘PD픽’으로 간택된 댄서들이다. 이들은 CJ가 주관하는 방송에 전 방위적으로 출연하며 셀럽이 됐고, <스우파> 후속 시리즈에 계속해서 나왔다. 모니카·립제이·허니제이·아이키·가비 등 소위 ‘리더즈’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한국 팀 ‘범접’은 이들이 또다시 엠넷의 선택을 받은 최신 버전이다. 범접 멤버들에게 제작진은 인생을 바꿔 준 은인이고, 제작진에게 범접은 자신의 출세작을 만들어 준 조력자다.
범접은 제작진에게 오랫동안 봐 온 인연이지만, 해외 팀은 방송이 끝나면 돌아가 더 볼 일이 없다. 이것이 '자국 팀 대 외국 팀'과 오버랩 되며 구도가 증폭된다. 시즌 최초로 해외에 송출되는 글로벌 방송임에도 제작진은 지나치게 범접을 보호하는 연출을 한다. 논란몰이와 ‘악마의 편집’은 이제 해외 댄서들을 상대로 거행된다. 방송의 특정 국면에서 문제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단지 방송의 비윤리성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충수 같은 연출, 이 방송엔 그런 비합리성이 팽배하다. 오죠갱은 이번 시즌이 낳은 스타 쿄카가 속한 팀이다. <월드 오브 스우파>는 지난 시즌들보다 흥행이 저조하지만, 오죠갱만큼은 시즌1의 인기 팀들 이상의 팬덤을 자랑한다.

합리적 행위자라면 이런 팀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방송 후반으로 갈수록 쿄카와 오죠갱의 분량은 줄어들고 ‘악마의 편집’이 습격한다. 손아귀에 좋은 패가 굴러 들어왔음에도 구겨 던지는 모양새다. 상황이 얼마나 기이하냐면 마치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 문제라는 듯 몰아가는 ‘인기 논란 프레임’이 지난 6화 이후 가해지고 있다. 이 상황은 오죠갱이 범접을 밀어내고 대중 투표 1위를 차지한 댄스 필름 미션 이후 급격히 물살을 탔다.
한국 방송에서 국가 대항전을 치르는 이상 한국 팀이 방송 중심에 놓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월드 오브 스우파>는 현실 논리 이상으로 범접이란 팀 자체에 매달린다는 인상이 든다. 국가 대표란 이름에 어울리는 정예 멤버를 뽑는 대신 시즌1의 리더들을 다시 소집한 것부터 첫 단추가 어긋났다. 법접의 활약상을 과장하고 논란 지점 하나하나를 씻어내주려는 연출 역시 지탄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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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이 외국 댄서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와 맞물려 방송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연출의 좌표가 표류한다. 지난주 화요일엔 원래 두 시간 이상 편성되던 방송이 사전 예고도 없이 90분 만에 끝나 버리며 시청자들이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월드 오브 스우파>가 다다른 상징적 파행으로서 항로를 잃어버린 제작진의 곤경이 고스란히 투영된 사태처럼 보인다.
인기투표로 승패를 정한다는 건 <스우파> 시리즈에 관한 대표적 비판이다. 하지만 이 방송에서 승리하는 건 춤을 잘 추는 팀도 아니고 인기가 많은 팀도 아니다. 제작진에게 선택받는 ‘PD픽’이야말로 분량과 심사와 경연 규칙 모든 면에서 절대적 이점을 얻는 수혜자다. 점찍은 출연자는 스타가 돼야 하고 선택하지 않은 출연자는 탈락한다. 그런 ‘편집의 성채’를 지켜내려는 고집이 시청자들의 요구나 방송의 흥행보다 우선시되어 연출 팀 전체의 크리에이티브가 억제되는 것은 아닐까. 이 방송이 제작된 과정이 철저히 결산되지 않는다면, 같은 이들이 만드는 향후의 방송은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