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1/0000058290
계엄 해제도, 탄핵도, 체포도 막았다.. “헌정 파괴, 이름으로 남을 것”
3대 특검 동시 압박.. 야당 내부 ‘방어냐 선긋기냐’ 갈림길
“정치보복? 이제는 수사 협조할 때”.. 내부서도 다른 목소리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이 집행되던 그날 밤,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 45명이 남긴 행위가 이제 정치적 심판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들을 “헌정질서 파괴의 공범”이라 규정하며 사과를 촉구했고, 동시에 3대 특검이 본격 가동되며 국민의힘 전체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정치보복”이라며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수사에 협조하자는 현실론도 분출되고 있습니다.
‘그날의 45인’을 향한 특검의 칼끝 앞에, 국민의힘은 정치적 생존을 건 선택의 기로에 선 모습입니다.

백승아 의원 페이스북 캡처.
■ “윤 전 대통령 구속됐지만, 45인 이름은 잊히지 않을 것”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2일 성명을 통해 “내란수괴 윤석열이 끝내 구속됐지만, 결코 잊어선 안 될 이름들이 있다”며 “그날 체포를 저지한 ‘윤석열 방탄 의원 45명’을 국민이 기억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백 대변인은 이들이 불법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과 체포를 저지했으며,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어 “국민의힘은 두 번의 탄핵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반성 없이 쇼만 반복하고 있다”며 “역사는 이들의 행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당은 특히 이들 45명 중 일부의 과거 폭행 논란, 망언, ‘바캉스 농성’ 등 사례를 거론하며 강도 높은 정치적 책임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들이 여전히 당 지도부이자 주류라는 사실 자체가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꼬집었습니다.
■ 특검의 칼끝, 어디까지?.. “45명 모두 수사 대상 될 수도”
‘3대 특검’ 즉 김건희 특검, 채상병 특검, 내란 특검이 동시에 가동되면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사면초가에 몰린 분위기입니다.
특히 내란 특검은 ‘계엄 해제 표결 불참자’, ‘체포영장 저지 의원’까지 수사 대상으로 보고 있어, 의원 개개인으로 번지는 압박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미 채상병 특검은 임종득 의원실을, 김건희 특검은 윤상현 의원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야권 내 지도부 일각에서도 “특검의 수사 폭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위기의식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내란특검법을 만들 때부터 민주당이 수사 대상을 명확히 설정한 것”이라며 “사실상 당 전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지도부 일부는 “계엄 해제 불참자는 민주당도 있지 않냐”며 역공도 시도하고 있지만, 수사 확대 흐름은 막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 분열 조짐? “수사 받아야” 목소리도
지도부가 ‘정치보복’ 프레임을 걸고 방어에 나선 반면, 내부에선 “이제는 털고 가야 한다”는 정반대 기류도 감지됩니다.
6선 조경태 의원은 “대통령 관저 앞에 모였던 45명 중 상당수가 특검 수사를 받을 수 있다”며 당내 기류를 직설적으로 꺼냈고, 내란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던 안철수 의원도 “수사에 협조하자”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당 안팎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혁신’의 깃발을 든 당 지도부는 오히려 불안한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제시된 ‘계엄 옹호 금지’ 당헌 개정안에조차 “사과의 무한반복이냐”는 내부 반발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 그날의 방탄, 그날의 책임.. 포위된 보수정당의 출구는 어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수감 이후, 정치권은 ‘계엄·탄핵·체포’라는 세 번의 고비에서 법치를 가로막았던 보수정당의 선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여전히 그날의 45인을 비호하는 한, ‘정권심판 프레임’은 민주당의 상시적 정치무기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공은 이제 국민의힘으로 넘어갔습니다.
특검 수사에 맞서 방어선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그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한 전환점을 만들 것인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씁니다.
확실한 것은, ‘방탄’의 무게를 더는 당 전체가 짊어질 수 있는 시점은 지나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날 밤 관저 앞에 모였던 45인의 선택은 그저 충성의 제스처로 끝나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책임의 불씨이자, 보수의 운명을 가를 도화선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