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오귀스트 페르디낭 마리에트 (1821년 2월 11일 ~ 1881년 1월 18일)는 프랑스의 학자, 고고학자, 이집트학자 였으며, 고대 유물 최고 위원회의 전신인 이집트 고대 유물 부서의 창립자였다 .

원래는 언어학자였는데 이집트학에 빠져들어서 "이집트로 즉시 돌아가지 않으면 죽거나 미쳐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문화와 역사, 유적을 사랑했으며(심지어 조국 프랑스보다도!) 유럽 및 미국의 이집트 유물 도굴 및 반출을 막고 이집트 유물은 이집트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집트 높으신 분들을 찾아가 열변을 토하며 유물을 아끼라고 일갈하던 사람이다. 아예 이집트인들에게 자국 문화재에 대한 위대함을 가르치고 보호하도록 제자들을 양성했다.
파리에 있는 오벨리스크 반출에 대하여 절규하던 마리에트가 이집트 영주이던 무함마드 사이드를 찾아가 분노했는데 사이드조차도 데꿀멍하고 알았다고 하며 유물에 대한 건 당신에게 맡기겠다고 물러섰을 정도이다.
19세기 이집트인들은 고대유물에 무관심에 가까웠고 이 점을 심각하게 개탄했던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직접 이집트인 학자 육성에 뛰어든다.
그리고 자국 황제인 나폴레옹 3세의 이집트 유물에 대한 욕심을 좀도둑이라고 앞에서 대놓고 비판해서 대노한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 입국을 금지해버렸다. 이런 이집트 문화재에 대한 사랑과 보호에 대한 노력으로 마리에트는 지금도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앞에 동상으로 남아 추앙받는다.
이 사람이 열성으로 육성한 이집트인고고학자중 하나가 투탕카멘 발굴시 카이로 박물관장이였는데 스승에게 가르침 받은대로 이집트유물의 국외 유출을 강력하게 막았다고 한다.

이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아니였다면 투탕카멘의 유물도 영국에 있었을 수도...(유물발굴에 자본을 댄 사람이 영국의 카나본백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