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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추진에 후순위로 밀린 사법개혁…말 아끼는 조희대
법조계 "검찰, 공소청으로 바뀌면 검사 퇴직 러시 이어질 것"

검찰개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퇴직한 (왼쪽)심우정 검찰총장과 (오른쪽)서울동부지검장으로 승진한 임은정 전 대전지검 부장검사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연합뉴스
민정수석·법사위원장·법무장관까지 사법·검찰개혁을 이끌 여권의 진용이 갖춰졌다. 개혁 대상이 될 법관들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정부·여당이 제1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검찰 내부는 상황이 더 암울하다.
2일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침묵 기조가 먼저 형성된 것은 사법부다.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유죄 판결로 촉발된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이 부당한지 등에 대해 전국법관들이 모여 회의를 했으나,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모두 부결한 것이 그 예다. 법원 안팎에선 "집권 세력의 눈치를 봐서 대표라고 모인 법관들조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형국"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날 올라온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에 대한 우려, 재판 독립의 보장 강조 등 다소 수위가 낮다고 판단되는 안건들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는 2시간 만에 종료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사법부를 흔드는 것 자체가 위상을 떨어뜨리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 전략이 맞다면 성공한 셈"이라고 했다.
이같은 사법부의 조용한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판사 출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사법부가 권력에 굴복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으나, 논쟁하는 것을 꺼리는 법관들 특성상 침묵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과 관련된 현안이 아닌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더욱 꺼려한다"는 법관 출신 변호사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정치적 논쟁을 피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5일 여당 주도의 대법관 증원에 대해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는 발언을 끝으로 공식 석상에서 발언을 최소화하고 있다.
무력한 분위기는 검찰에서 더욱 강하게 감지된다. 정부가 1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전격 단행했는데,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검사를 서울동부지검장에 임명하고, '건진법사 게이트' 사건을 수사해 온 김태훈 서울고검 검사를 서울남부지검장에 승진시키는 등 '친(親)민주당' 성향의 검사들을 중용한 것도 조직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임 지검장의 경우 그간 검찰개혁 필요성을 설파했던 만큼 이번 인사를 통해 향후 '검찰이 운영될 방향을 예측할 수 있지 않겠냐'는 평이 뒤따른다.
검찰개혁의 방패막이 되어줄 인물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심우정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가 1일 줄사의를 표했기 때문이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올 것이 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은 "어려운 시기에 떠나 죄송한 마음"이라는 글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작성하기도 했다.
검찰청이 공소청으로 바뀌는 시점이 되면 검사들의 퇴직 러시가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법조인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다. 특히 선배 검사들과 달리 평검사들은 자신들이 악마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분개심이 크기에 조직에 대한 애심(愛心)을 잃고 있다고 한다. 검찰에 10년간 몸담았던 법조인은 "(현재의 검찰은) 침몰하는 배와 같다. 누가 먼저 탈출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공소청으로 바뀐 후 이직을 하려면 검찰이 현존하는 지금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인 검찰개혁을 이끌 3인. (왼쪽부터) 봉욱 민정수석, 이춘석 법제사법위원장, 정성호 법무부장관 후보자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연합뉴스
검찰개혁 순항 의구심 계속…봉욱·정성호 역할 시험대
그러나 검찰개혁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조국혁신당에서 이재명 정부의 인사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봉욱 민정수석을 두고 황현선 혁신당 사무총장은 "2022년 4월 문무일 전 검찰총장 등과 함께 수사·기소 분리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관과 함께 법무부를 이끌어갈 이진수 신임 법무부 차관에 대해서도 "친 윤석열 검사, 친 심우정 검사"라고 직격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온건적 성향도 변수다. 그는 1일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검찰 해체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했는데, 여권 강경파들은 이 발언을 문제 삼고 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개혁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추진 동력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정부·여당에 형사소송법 전문가가 없기에 검찰개혁이 미완에 그칠 수 있다는 비관적 관측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민주당이 검찰개혁 추진 의사가 매우 강하지만, 형소법 개정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인천지검 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검찰개혁을 1~2년 내에 마무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단 기간 내에 입법을 추진할 경우 졸속 입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검찰개혁을 진행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입장이다. 김병기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와 합심해 검찰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1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에 집중된 권한의 재배분 문제에 대해선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공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