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읠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나는 그대가 실패하길 바라면서도,
그대에게 감사하고 싶어.
이 두 가지는 모순 없이 공존 가능한 마음이지.
인간이란 본디 그렇게 설계된 존재가 아닌가?
새로 꽂아 놓은 봄꽃은 분분하고,
온도를 잘 맞춘 물에 우린 차는 향기롭다.
슬픔이란 그 아래 고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씻어낼 수도 없다.
우리는 그 슬픔과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
혁명조차도 사람이 하는 일인 걸 알아두렴.
대의만으로는 부족한 한 뼘을 인간이 메우지.
그런 존재들이 있어.
이 애 때문에 난 살거나 죽게 될 거야.
이렇게 선명하고 이토록 똑바르게,
오로지 저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눈길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신들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올곧게,
항상 미지인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인간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은 결국 사랑의 기록이자 실천이었다.
신은 옳은 것인가?
그녀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가?
고통을 줄이기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압도적인 소수가 저 모든 고통을 짊어져야만 하는가?
신의 뜻 밖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과도하고 잔혹하지 않은가?
우리는 신의 뜻에 의해서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혁명은 붉지 않지만,
나는 그게 나쁘게 여겨지지 않는걸.
그들의 붉은 깃발은 피로 물들인 거야.
반드시 그 방향만이 진보일까?
느린 걸음은 걸음이 아닌가?
당신이 다시 없으리라고 믿을 때 우리는 고백을 한다.
평생을 함께해 달라고.
당신과 함께 살다가 죽겠다고.
하지만 당신이 다시 태어나고 내가 또다시 태어난다면
결심과 고백의 무게는 하찮아진다.
여기서 '당신'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세계를 비유하는 단어이다.
사랑이 죽은 세계에선 사랑의 언어를 흉내 낼 수밖에 없으니까.
첫 생애, 첫 사랑, 첫 재난.
우리는 태풍에게 잔을 쥐는 법을 묻지 않는 법인데.
그는 그걸 모르고 나는 심장이 타버렸다.
너는 잘 해냈어.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좋았어.
내게 있던 것?
오직 사랑이지.
이것은 참으로 긴 이야기.
신이 쓰는 인간의 서사시.

자연주의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그러니까, 감히 말하건대 자유 의지 대신 신의 뜻과 운명에 종속되는 삶을 살길 바라지 않는다.
감히 성당 위에서 불경을 기원한다.
사랑하는 것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이제 뒤로 하고 걸어나올 수 있음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이었다.
가장 끝의 날까지 남을 유일한 사랑이다.
이런 게 대의라면, 나는 이제 뭐가 정의인지 모르겠어.
나는 아직 부족해서 몰라.
난 어머니처럼 훌륭한 정치인도 아니고,
반발심에서 비롯된 고집이든 뭐든 엘리아스처럼 정의를 악착같이 좇지도 않아.
나는…· 언제나 모두가 깔아 놓은 길을 따라 걸어왔고,
그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이의 생명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나는 당신으로 내 기억을 채우고 싶어요.
역사가 수십 번 반복되고
비로소 세상의 끝을 맞이 하는 그날까지, 당신을 떠올릴 수 있게.
왜 이런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남들의 기대를 깨어도 괜찮으려면 제가 제게 하는 기대부터 깨야 했는데요.
표준이 존재하는 집단에서 표준 외 존재는 규율을 어긴 이가 되지.
각자가 각자의 조건을 고를 수 없고 그저 자연히 그렇게 태어났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첫 숨을 들이마신 순간부터 그 인간은 죄인이 되는 거야.
하지만 시대가 우리를 부르잖아.
시대가 만민을 불러.
우리는 그 시대 앞에 살아.
아니야. 누구나 광야에서 통곡하지 않니.
그런 통곡은 예고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지.
예고하고 찾아온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어?
왜 울어, 이렇게 훌륭한 날에.
달이 맑아.
하늘이 맑은 거겠지,
그래. 네가 할 말이 내겐 너무나도 선명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라도 써둘걸.
행복해?
너는 너를 불살라 이룩하는 평화에 행복을 느껴?
내 장송곡이 울려 퍼져야 할 날에
개선가를 울리게 할 각오로 황제가 되려는 거야.
네가 옳아.
나는 불의를 행하고 있어.
만민을 지켜야 할 자리에 올라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으니
그게 불의가 아니고 무엇이지?
나는 그를 사랑하기에 그에게 살아달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