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30551
조선일보·서울경제 정부 추경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 소환
나라 재정 어려우니 문 정부처럼 ‘확장재정’ 안 된다고 경고
세수 결손으로 사실상 ‘확장재정’ 윤석열 정부 책임은 없나

이재명 정부가 30조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 다수 신문이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소환했다. 나라의 곳간이 비어가고 있으니 문재인 정부처럼 '재정 중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대규모 세수 결손을 기록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었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말 한국의 국가 채무는 1300조 원을 넘을 예정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李 "재정 써야 할 때" 쓸 재정 있느냐가 문제> 사설에서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제 재정을 써야 한다' '재정은 그냥 두면 곳간이 썩는다'며 돈을 뿌렸고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나마 당시엔 세금이라도 잘 걷혔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서울경제도 문재인 정부를 언급했다. 지난 20일 <빚내서 전 국민 민생지원금 지급…'재정 중독' 경계심 가져야> 사설에서 "나랏빚이 급증하면 물가 상승과 국가 신인도 하락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부채는 600조 원대에서 1000조 원대로 급증했지만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3%에 불과했다. 재정 중독에 빠져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신성장 동력 발굴과 노동·교육 등 구조 개혁은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23만명 빚 없애주고 나랏돈 20조 뿌리기… 재정건전성 불안>(문화일보), <20조 더 푼 정부, 재정건전성 '빨간불'… 국가채무 1300조 돌파>(디지털타임스) 등의 기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확장재정 기조를 선언한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부채가 300조 원 이상 늘었고 국가채무도 처음 1000억 원(2022년)을 돌파했다. 하지만 '나랏빚 급증'을 우려하며 문재인 정부만 예시로 든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재정 적자로만 보면 윤석열 정부 때 더 나빠진 지표들이 많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을 선언했지만 수십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감세 정책을 유지했고, 그 결과 재정건전성이 악화해 사실상 '확장재정'을 편 셈이 됐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25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는 재정의 열악한 상황을 숨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대신 한국은행에서 무차별적으로 차입했다"며 "원래 한은 차입금은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2024년 한 해에만 누적으로 173조 원을 차입했고 이자로만 2092억 원을 지출했다. 문재인 정부 3년 차였던 2019년 한은 대정부 대출 누계액이 36조 원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더 쓴 측면이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소비 위축을 정부 재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였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재정을 과감하게 쓰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나라 곳간만 놓고 보면 코로나19를 겪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윤석열 정부의 책임과 동등하게 보기 힘들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22년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2017~2021) 재정수지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며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 2018년은 2.2%, 2.6%로 이전보다 큰 규모의 흑자를 기록한다"고 했다.
이 위원은 당시 문 정부를 '곳간 거덜', '슈퍼 예산' 등으로 묘사한 언론을 향해 "실제는 사상 최대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한 긴축예산"이라며 "긴축예산을 확장예산이라고 표현한 모든 언론 보도는 오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재정 상황을 앞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진보 성향의 신문에서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20일 <'30조 추경' 신속 집행해 국민 시름 더는 마중물 삼길> 사설에서 "지금부터는 추경 후 빈 나라 곳간을 어떻게 채울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경향신문은 문재인 정부 대신 윤석열 정부를 언급하며 "무분별하게 벌인 감세 정책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경제지표는 '최악'에 가깝다. 비상계엄으로 소비 심리가 강하게 위축됐고 경제성장률도 0%에 수렴한다. 자영업자들은 IMF 때보다 체감 경기가 안 좋다고 호소한다. 정부의 재정 지출을 선호하지 않는 논조의 매일경제도 지난 19일 <늦어도 한참 늦은 추경…이제라도 신속 집행을> 사설을 낼 정도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추경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재명 정부가 추경에 포함한 소비쿠폰을 '중독성 강한 진통제'에 비유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고 추경으로 '땜질 처방'한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지난 19일 추경안을 놓고 "그야말로 포퓰리즘 정권의 화려한 데뷔 쇼"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은 언론에 따옴표로 인용되며 추경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했다. <조정훈 "추경안, 포퓰리즘의 전형적 레시피…'소비 쿠폰'? 중독성 강한 진통제">(6월20일 TV조선), <국힘 송언석 "추경, 사이비 호텔경제학의 대국민 실험장">(6월20일 세계일보) 등이다.
이러한 논평이 얼마나 큰 설득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김치형 경제평론가는 지난 21일 MBC라디오 '뉴스하이킥'에서 "야당 쪽에서 얘기하는 '마약성 진통제'라는 표현에 동의하기 힘들다"며 "곧 죽어가는 환자라면 마약성 진통제라도 놔서 고통을 덜어주고 체력이 회복되고 난 뒤에 체질 개선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인데 지금은 체질 개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라도 극약 처방을 해야 하는 경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