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yeongin.com/article/1743731
‘흉기 위협’에도 접근금지 명령이 전부
범행 전날까지 총 두 차례 아내 찾아가
조치 끝난지 일주일만에 살해 저질러
아들 C씨, 경인일보 만나
“피신 당부해… 잠깐 집 비운 사이에 사건”
적극대응 없었던 경찰의 부실수사 도마
아내를 흉기로 위협한 가정폭력 가해자로 불구속 수사를 받던 남편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풀린 지 일주일만에 앙심을 품고 아내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아내는 앞서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남편의 재범이 우려된다며 분리 조치를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단지 남편이 초범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법원에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만 신청한 채 불구속 수사를 했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또 남편은 6개월간의 접근금지 명령이 종료된 뒤 범행 전날까지 두 차례에 걸쳐 아내를 찾아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삼산경찰서는 20일 살인 혐의로 60대 남성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전날인 19일 오후 4시30분께 아내 B씨와 함께 살던 인천 부평구 부평동 자택 현관에서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법원이 명령한 ‘주거지에서 퇴거’, ‘100m 이내 접근금지’, ‘연락 금지’ 등 임시조치가 끝난 지 7일 만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B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6월20일 인터넷보도)
사건 현장을 목격한 이웃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B씨는 옷이 모두 발가 벗겨진 채로 자택 현관 앞 복도에 쓰러져 ‘살려달라’고 외쳤다.
■ 흉기로 찌르겠다 협박해도 ‘초범이라’ 불구속
지난해 12월 17일 A씨는 B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흉기를 들고 ‘확 찔러 버린다’며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다음날 B씨는 A씨가 또다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까 우려해 경찰에 남편과 분리될 수 있도록 임시조치를 신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라 접근·연락 금지 등 임시조치 기간은 2개월간이며, 2회 연장해 최대 6개월까지 가능하다.
경찰은 A씨가 흉기를 들고 B씨를 위협한 것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B씨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112신고가 접수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며 “특수협박이 반복된 경우라면 구속 영장을 신청했겠으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아 불구속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결국 불구속 상태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던 A씨는 접근명령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집에 찾아가 B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임시조치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한 A씨는 아내가 집 비밀번호를 바꾸고 자신을 냉대했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 접근금지 끝나고 일주일 새 3차례 찾아가
A씨는 범행 사흘 전인 지난 16일에 이어 하루 전인 18일에도 잇따라 B씨를 찾아갔다.
16일 당시 집을 비웠던 B씨는 “남편이 집에 찾아왔다”는 이웃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19일에는 경찰서를 방문해 스마트워치를 받고 자택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할 수 있는지 문의하려 한 B씨는 결국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A씨에 의해 살해당했다.
또 18일에는 A씨가 자택에 찾아오자, B씨는 문틈으로 A씨가 요구하는 물건들을 전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아들 C씨는 경인일보 기자와 만나 “사건 전날(18일) 집 근처에서 배회하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이모나 외삼촌 등 친척 집에 가 있으라고 말했었다”며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사건이 벌어졌다.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이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가정폭력 실태와 피해지원 강화 방안’ 보고서를 발간한 김미선 인천여성가족재단 연구원은 “가정폭력 사건은 수사 과정과 판결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지 등의 의사가 중요하게 반영된다”며 “피해자가 재범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경찰은 가·피해자를 가장 확실하게 분리할 수 있는 구속 조치를 하지 않아 결국 피해자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