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이수만은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컴퓨터공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때 MTV가 등장하며 미국 음반산업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광경을 현지에서 직접 보며 연예기획자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198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수만은 방송활동을 재개하지만 실패한 후 가수를 그만두고 프로듀서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본격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인천 월미도와 방배동에 까페를 차려 사업자금을 마련한 다음 한동준(대표곡: 너를 사랑해)과 김광진(대표곡: 편지)을 영입합니다.
김완선과 박남정 이후 국내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한 댄스음악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놓칠수 없었던 이수만은 미국 본토감성의 본격적인 흑인댄스음악을 한국에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알앤비 가수 바비브라운을 참고합니다.
바비 브라운은 두명의 댄서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춤을 추는 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은 이수만도 3인조 그룹을 기획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0FKzPfsxA4
구체적인 구상이 끝난후 이수만은 이태원의 여러 유명클럽을 직접 발로 뛰며 "음반을 낼까하는데 춤 되고 노래되는 애 있으면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때 이주노와 현진영을 이수만에게 소개합니다. 이주노와 현진영을 저울질하던 이수만은 현진영이 이주노보다 노래를 잘하는 점에 현진영을 발탁합니다. 이때는 1988년이며 현진영은 당시나이가 16세였습니다.
이수만은 미국인 트레이너를 고용하여 16세의 현진영에게 미국 현지의 흑인 R&B 창법과 힙합댄스를 훈련시키게 됩니다. 1989년 이수만은 송파에서 SM기획를 창립합니다.
1990년 훗날 클론으로 데뷔하는 강원래와 구준엽을 추가로 발탁하여 현진영을 중심으로 '현진영과 와와'를 데뷔시킵니다. 현진영과 와와는 당시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 등과 같은 탑급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야한여자, 슬픈마네킹 등으로 점점 반응을 얻기 시작합니다.

1991년 부산의 야외무대에서 현진영과 와와가 공연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현진영을 무대 아래로 끌어내려버립니다. 현진영은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SM기획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최진열, 정해익등 SM의 임직원들이 큰 고초를 껶었으며 회사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고 와와의 활동마저 중단되고 맙니다.
자신의 1호 가수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볼수없었던 이수만의 노력으로 현진영은 1년만에 출소를 합니다. 그후 부활을 꿈꾸던 현진영은 이탁과 함께 여러 곡을 공동작곡을 하였습니다.
1992년 4월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현진영의 2집 앨범 "New Dance 2"를 발표합니다. 타이틀곡은 문나이트에서 친한 이탁이 만든 "흐린 기억 속에 그대"였는데 당시 현진영은 커다란 후드티와 한껏 내려 입은 청바지로 코디한 후 빨라진 음악에 맞춰 현란한 댄스를 선보입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높은 완성도와 함께 굉장한 인기를 얻었으며 같은 앨범의 '너는 왜'는 '현진영 고 진영고'라는 후렴구와 랩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6IpyiQb-Vg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과 음악에 익숙한 대중들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도 커다란 지지를 보냈고, 현진영은 서태지와아이들의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과 현진영 3집이 정면대결을 펼칠 93년 가요계는 모두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발표한지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진영은 구속되었고 방송정지를 당합니다.
이때의 여파로 무려 40만장을 찍었던 현진영의 음반은 검찰에 압류되고 상품은 소각처리되어 SM은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이수만은 월미도와 방배동의 까페를 매각하여 파산위기를 겨우 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소속 연예인인 한동준, 김광진, 신동엽, 김승현, 이홍렬은 SM이라는 회사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여겨 떠나게 됩니다.
<대마초 피운 현진영에게 이수만이 한말>
..... 그는 이태원의 나인트클럽 무대에서 아르바이트로 춤을 추던 그를 정식으로 데뷔 시킨 프로듀서였다. 이태원의 춤 잘 추는 소년 현진영에게 던진 초보 프로듀서 이수만의 첫마디,
"앞으로 생활비 걱정하지 말고 연습이나 열심히 해라"
2년간의 혹독한 준비 끝에 성공적 데뷔를 이룬 현진영은 어둠의 유혹에 넘어가 대마초를 흡입하고 만다. 현진영은 구치소에서 사회에서는 감히 꿈도 못 꾸었을 수모를 경험한 다음에야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출소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이수만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자신을 버리지나 않을까 너무도 걱정이 되었던 거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차마 고개를 못 들고있는 현진영에게 이수만은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재기를 하려면 지금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거다."
남은건 유영진뿐.
이수만은 망해가는 회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심하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폭발하기 시작한 10대들의 문화소비 성향에 컨셉을 맞추어, 같은 또래라는 동질감, 그리고 순정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외모를 주무기로 한 댄스그룹을 결성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당시는 학원폭력이 심각해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대의 건전한 문화가 필요한 시기였죠.
우선 밝은 캐릭터의 멤버 5명을 선발하고, 학원폭력을 고발하는 주제의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1집을 제작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그룹 이름은 회의를 통해 H.O.T.(High-Five Of Teenagers: 10대들의 승리)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수만의 마지막 도박이었던 이 소년들은 대한민국 가요계를 뒤바꿔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