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국영은 데뷔후 10년간의 무명시절을 거쳐 인기가수에서 최고의 배우가 된 스타이다

홍콩에는 장국영의 무명시절을 가리켜
"장국영도 10년을 견뎠는데..."라는 속담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한다

장국영은 홍콩의 부유한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불화로 늘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사업으로 바쁜 부모님때문에 유모의 손에서 자랐고,
그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은 평생 단 5일뿐이었다

장국영은 어린시절 유일한 그의 친구였던 유모를 은인으로 생각하며
성인이 된 후 유모가 병으로 몸져 눕자, 직접 병수발을 들기도 했다

장국영은 팬들을 항상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기로 유명했는데
골수암에 걸린 팬이 장국영을 만나는게 소원이라 말한것이 전해져서
직접 병원에 방문해 팬을 만나고 수술비와 병원비를 전부 내줬다고 한다
장국영은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고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려지게 된다

한국에도 여러 번 내한했던 장국영은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의 보육원과 인연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아시아 최고 톱스타였던 장국영의 말년은 쓸쓸했다
홍콩 반환후 쇠락해 가는 홍콩영화계를 살리려 애썼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파파라치와 찌라시 언론들 때문에 심한 마음 고생을 했다
장국영이 움직일때마다 수십명의 파파라치들이 붙어서 따라다녔고
그가 내뱉는 말들은 심하게 왜곡되어 언론에 뿌려졌다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던 장국영은 천녀유혼,패왕별희,아비정전,영웅본색,해피투게더 등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기고
2003년 4월 1일 발없는 새가 되어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장국영이 가진 분위기와 눈빛은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듯..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의 사랑 덕분에 살아왔고 살아가게 될테니까요.
-장국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