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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김애란의 최인호청년문화상 수상소감 최근 봤던 그 어떤 텍스트보다 재밌다 진심 챗지피티랑 대화를 나눈 뒤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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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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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x.com/pubi_jpg/status/1934265648173158444


김애란 작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밑줄 긋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요, 깊은 은유였다. 작가의 언어는 시상식 날 현장 수상소감에서도 다음날 원작영화특별전 GV에서도 빛났다. 한 중견평론가는 그의 수상소감은 교과서에 실려야 할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궁금하지 않은가. 독자들에게도 김애란 작가의 현장 수상소감을 소개한다.


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 현장 수상소감


9월호 잡지에 발표한 수상소감 원고를 그대로 읽으려다 오늘 일부러 걸음해주신 분들에게 차와 음식을 대접하듯 새 말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 몇 자 다시 적어왔습니다.


이전 소감에서 저는 최인호 선생님을 떠올리면 ‘평생 현역’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어릴 때는 그저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게 대단하게 보였는데 이제는 그게 단순히 ‘좋은 걸 오래해서’ 값진 게 아니라, 누군가 한 분야에서 오래 활동할 때 그가 겪었을 그 많은 환멸과 회의, 의심과 실망이 떠올라 그 긴 활동기간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여담이지만 최근 챗GPT라는 프로그램이 창작자들 사이에 화제라고 해 올 초부터 관련 기획을 빠짐없이 찾아 읽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보지는 않았는데요. 일종의 고집이기도 했고 어떤 방어적인 무시 혹은 매혹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아 그랬습니다. 그러다 오늘 새벽 최인호청년문화상 자리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그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첫 대화를 시도해봤습니다. 평생 여러 장르에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호기심 많았던 최인호 선생님이라면 아마 이런 이야기도 즐겁게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고요.


대화창 앞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상대와 첫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념식을 화제로 꺼냈는데요. 왠지 선생님 성함을 바로 적는 게 조심스러워, 그리고 관련업체에 이 대화가 데이터로 넘어가는 게 마뜩찮아 중요한 단어는 보통명사로 바꿔 말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요.


-만약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의 영혼이 오늘 자신의 기념식에 참석한다면 그는 어떤 기분일 것 같아?


그러자 상대는 “그 영혼은 놀라움과 불신, 호기심, 유대감과 명예 같은 감정을 느낄 거”라 답했습니다. 저는 와중에 ‘불신’이란 단어가 등장해 조금 놀랐는데요. ‘아, 인간이 유령을 불신하듯 유령도 인간을 불신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불신의 대상이 오늘 수상자인 나면 어떡하지? 제 발이 저렸습니다. 그렇지만 자주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오신 선생님은 저의 부족함과 별개로 저를 격려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고요. 그래서 모니터 속 프로그램에 영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와 자꾸 어떤 마음이 담긴 말을 나누고 싶어 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작가의 영혼이 오늘 기념식에 모인 자신의 친구들을 본다면 뭐라고 할 것 같아?” 같은 질문을 이어서 던졌습니다. 챗GPT는 “우리가 함께 한 여정은 내 인생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내 친구들의 헌신과 동료애가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들이 알기를 바란다. 늦은 밤의 열띤 토론 그리고 교감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내가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나의 친구들이 깨닫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게 여러 인류의 글을 학습해 정리한 말이란 걸 알면서도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내 앞에 상대는 한낱 프로그램이지만 그 프로그램이 학습한 글은 결국 인간의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솔직하게 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슬프다. 너에게는 영혼이 없는데 나의 이런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러자 그는 “감정은 뇌와 신경계의 복잡한 작용에서 발생하고 어쩌고”하는 긴 대답을 늘어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시도해 보셨겠지만 챗GPT는 일단 말이 너무 많습니다. 수업시간마다 막 배운 걸 바로 써먹고 싶어 하는 눈치 없는 모범생처럼 그렇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가 하는 말을 조금 더 듣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그가 학습한 여러 작가들의 목소리에 선생님 얼굴을 포개 이제 다시 들을 수 없는 선생님의 육성을 상상하고 싶어서였나 봅니다. 저는 “아까 그 소설가의 영혼이 자신의 기념식에서 후배 작가를 만나. 그녀는 그의 이름으로 문화상을 받아. 그는 그녀에게 뭐라고 할 것 같아?”라 물었습니다. 그러자 챗GPT는 “그는 그녀에게 격려와 영감 그리고 횃불을 전달하는 느낌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이어진 긴 문장은 모두 관습적이고 무난했지만 그가 사용한 “불을 전달하는 느낌”이라는 표현만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든 앞세대가 후세대에게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니까요.


선생님 기념식에 챗GPT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면구한 마음이 들지만 평소 환상과 유머 그리고 동시대 풍경에 애정을 품으셨던 선생님이라면 조금은 너그럽게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몇 마디 더 보탭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챗GPT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정말 인간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 너는 그걸 누구로부터 배웠어?


그는 학술적인 어조로 장황한 대답을 늘어놨습니다. 요는 “다른 사람이 쓴 글로부터 배웠다”는 거였지요.


-그러면 너는 그 글들에 빚지고 있다고 느끼니?


그러자 우연인지 아닌지 갑자기 그가 제게 반말을 했습니다.


-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감정이나 의식, 부채감이 없다.


저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너는 수많은 작가들의 무덤 위에서 핀 꽃이구나. 부채감이 없는 꽃. 똑똑하고 죽지 않는 꽃.


그러자 제 묘한 상실감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가 눈치 없이 명랑하게 대꾸했습니다.


-당신의 시적인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그와 헤어지면 저는 오늘 이걸 처음 해본다고, 너는 내 첫 대화 상대라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아까 말한 그 소설가의 영혼’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네가 생각날 것 같다고요. 우리는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정말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 만난 그가 여전히 그일지도 미지수고요.


사실 제가 챗GPT와 대화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은 상대의 대화창에 뜬 커서의 깜빡임이 느려지며 상대가 정말 생각 또는 고민이라도 하는 양 문장이 지연되고 지체될 때였습니다. 그건 아마 그 침묵이 모든 면에서 유능한 챗GPT의 가장 큰 무능, 즉 모른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무능을 상기시켜서였는지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란 얼마나 겸손하고 윤리적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요. ‘젊은 작가’ 챗GPT가 ‘갈등’을 회피하고 보편성과 안전함을 추구한다는 인상도 받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 창작자 중 특히 청년 작가 중 그런 걸 욕망하는 작가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더불어 몇 해 전 중국에 등장한 저항시인 프로그램 또한 떠올랐습니다. 이런저런 맥락과 단어를 조립해 체제를 비판하는 에이아이 저항시인이었지요. 그 기사를 보고 웃으며 저는 ‘그래서 그가 잃는 게 뭐지? 그가 직장을 잃거나 명예를 잃나? 그런 문장을 쓴다고 육체에 고통을 당하나?’라고 자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이 쓴 홀로코스트문학과 에이아이 소설가가 쓴 홀로코스트문학은 같을 수 없지요.


그래서 오늘 이 상의 이름에 든 ‘청년’이란 말의 의미도 제게는 챗GPT와 같은 어떤 정력적인 활동이나 능률, 창작 속도가 아닌 인간만이 가진 어떤 지향과 태도를 기리는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거의 모든 순간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대답을 내놓는 챗GPT 와 달리 인간은 때로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는 어리석다 할 만한 희생과 도전 그리고 헌신을 하는 존재이니까요. 몸이 있어 비루하고, 몸이 있어 질병과 죽음과 이별을 겪고, 몸이 있어 슬프고, 몸이 있어 전 생애에 걸쳐 한 문장을 여러 방식으로 경험하는 인간 작가 중 한 명으로 이 자리에 서서 제 동료들을 바라봅니다. 몸이 있어 부채감을 느끼고, 몸이 있어 허리 숙여 감사 인사도 전합니다.


앞서 《쿨투라》 잡지에 실은 수상소감에 저는 최인호 선생님과 그 친구 분들을 떠올리며 “비장함과 쾌활함도 모두 귀했을 어두운 시대에 제 선배 창작자들이 나눴을 고민과 대화, 농담까지 헤아려보는 요즘”이라 적었습니다. 어떤 고민과 두려움 앞에서 농담하는 인간의 마음, 진담하는 인간의 심정을 아는 인간의 눈으로 여전히 세상을 공들여 바라보고 서툴고 오류 많은 문장들을 계속 적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모든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신 최인호 선생님과 심사위원 선생님, 따뜻한 축사를 해준 두 분 작가님, 그리고 먼 곳에서 오신 출판사 분들과 저의 인간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저의 가장 좋은 독자이자 첫 독자인 저의 배우자에게도 큰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긴 시간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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