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비행운', '바깥은 여름' 김애란 작가 8년 만의 단편 신작 『안녕이라 그랬어』
1,984 11
2025.06.16 15:25
1,984 11
yCQqkC
OqVRIy


• 홈 파티
• 숲속 작은 집
• 좋은 이웃
• 이물감
• 레몬케이크
• 안녕이라 그랬어
• 빗방울처럼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희곡 속 사건은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홈 파티」, 42쪽)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이번 책에서는 인물들이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은 집주인의 미감과 여유를 짐작하게 하는 우아하고 안정적인 공간이거나(「홈 파티」), 값싼 물가와 저렴한 체류 비용 덕분에 한 달 여행이라는 “생애 처음으로 누리는 사치”를 가능하게 하는 해외의 단독주택이다(「숲속 작은 집」).

또는 정성스레 가꾸고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새 집주인을 위해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전셋집이거나(「좋은 이웃」), 회사를 관두고 그간 모은 돈을 전부 털어 문을 연 책방이기도 하다(「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이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삶 그 자체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방 한 칸’이 가지는 의미를 남다른 통찰력으로 묘사해온 바 있는 김애란에게 어떤 공간은 누군가의 경제적, 사회적 지표를 가늠하게 하는 장소이자 한 사람의 내력이 고스란히 담긴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장소이다.

때문에 이번 소설집에서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서로의 삶의 기준이 맞부딪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로 살아온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 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 pp.175-176 「이물감」 중에서

고통이 나를 압도할 때 나는 일부러 집밖으로 나가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갓 걸음마를 뗀 아기가 엄마 아빠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듯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공원을 지나간다. 마치 거길 다 통과하면 내가 더 자라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뒤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 고통을 해결해주는 자연 따위는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곤 이미 아는 걸 한번 더 깨달으려 다음날 다시 같은 장소로 나간다. 내 고통에 무심한 자연 앞에서 이상하게 안도한다.
--- p.204 「레몬케이크」 중에서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 p.249 「안녕이라 그랬어」 중에서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 p.250 「안녕이라 그랬어」 중에서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 p.253 「안녕이라 그랬어」 중에서




목록 스크랩 (1)
댓글 1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메이크프렘X더쿠] 이제는 잡티와 탄력 케어까지! PDRN & NMN 선세럼 2종 체험단 모집 221 02.15 16,078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708,719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614,180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716,43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919,469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52,948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93,71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12,79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7 20.05.17 8,622,80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502,20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71,99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94076 유머 사소한 칭찬에 울컥 21:18 9
2994075 이슈 엑디즈 Xdinary Heroes(엑스디너리 히어로즈) 공식 팬클럽 Villains 3기 모집 X-BLADE⚔️🎵✨ Coming Soon! 21:17 26
2994074 유머 내 여친이 덤덤충이면서 ㅈㄴ 센스가 있다? 피하세요. 2 21:17 392
2994073 이슈 단체로 ㅈㄴ 개무리하는(p) 르세라핌 설날 자컨ㅋㅋㅋㅋㅋㅋㅋㅋ 1 21:16 285
2994072 유머 최가온이 유럽 생활중에 가장 먹고 싶었던 한식 21 21:14 1,879
2994071 유머 온유럽에 자기네 무기쓰라고 난리쳤던 프랑스 근황 2 21:14 836
2994070 이슈 레전드사극 용의눈물의 유일한? 오점 7 21:14 646
2994069 이슈 관식이로 이미지 세탁한 악역 전문 배우 5 21:13 1,189
2994068 이슈 4년만에 신곡 나오는데 홍보가 너무 없는 것 같은 우주소녀.jpg 3 21:13 519
2994067 이슈 이번에 공개된 대동여지도 완전체 19 21:10 1,712
2994066 정보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의 수능 수학 30번 문제 정답은? 5 21:10 580
2994065 유머 상판다 쩍벌 곰쥬 루이바오💜🐼 5 21:10 670
2994064 이슈 13년 전 어제 발매된_ "Good bye" 21:08 175
2994063 이슈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보러온 박지성 7 21:08 1,868
2994062 유머 주인이 부를 때마다 천천히 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강아지 11 21:08 1,230
2994061 이슈 조선 왕실에서도 절레절레할만큼 인성 막장으로 유명했다는 왕자 22 21:06 2,401
2994060 이슈 EXO 엑소 'Crown' Dance Practice Behind The Scenes 4 21:05 279
2994059 유머 제대로 게장 먹는 일본인 17 21:05 1,677
2994058 이슈 IVE 아이브 [REVIVE+] 멤버별 솔로곡 하이라이트 메들리 31 21:04 651
2994057 유머 세무사 사무실의 1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 21:03 3,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