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동네에서 큰 도시로 가는 것도 희망인데, 한국에 가는 건 완전 성공이라 생각했어요."
지난해 8월,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한국에 온 하나는 곧 예상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했다. 아이 돌봄 업무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청소와 세탁 등 일반적인 가사 노동에 주로 투입됐다. 때로는 이용가정의 시어머니 집까지 가서 청소해야 했고, 생리혈이 묻은 속옷을 세탁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거절은 쉽지 않았다. 한 동료는 "아기를 돌보러 왔으니 이런 일은 못 하겠다"고 항의했다가 벌금 1만원을 물었다.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인 16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가 저출생 대응과 임산부 경력단절 완화를 명분으로 도입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현장에선 돌봄이 아닌 가사노동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식적으로는 돌봄 서비스 제공이 주요 업무지만, 실제로는 집안일과 청소, 설거지, 반려동물 산책까지 떠안는 하우스키퍼 역할이 대다수였다.
이 시범사업을 통해 선발된 필리핀 여성 100명은 산모·아동·노인 간호와 같은 기능 시험, 어학능력 평가, 건강검진 등의 절차를 거쳐 지난해 8월 한국에 입국했다. 하나도 한국에 오기 전 필리핀에서 케어기버 자격증(Caregiving NC II)을 취득한 직접돌봄 전문가다.
이들의 표준근로계약서에는 가사관리사가 유아·아동이나 임산부의 일상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돼 있다. 직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동거 가족 구성원을 위한 부수적이고 가벼운 일도 맡을 수 있도록 한 조항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 조항이 '부수적' 수준을 넘어선 광범위한 가사노동으로 해석·적용되며, 돌봄보다는 더 강도 높은 집안일 중심의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애초 안내 받았던 정책 취지와 실제 업무 간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띠가는 "온 집을 청소한 다음에야 아이를 돌볼 수는 있다"했고 이사는 "지난 6개월 동안 주로 집안일을 해왔다"고 말한다. 리마 역시 "아이를 돌보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일을 바꿔주지 않아 그냥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내 일이다"고 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 비자(E-9)를 갖고 있어 고용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외국인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두 곳뿐이어서 한 곳과 계약이 해지되면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로 좁혀진다. 언제든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정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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