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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과 심리를 공개한다"는 헌법과 모순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문 열람 시스템'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됐습니다. 폐쇄적인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두고 포괄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JTBC 취재에 따르면, 김윤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등 4명은 '판결문 열람 시스템'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13일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헌법 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는데, 정작 판결 내용이 적힌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위헌이라고 보고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나선 겁니다. 헌법재판소법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은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판결문 열람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지 않습니다. 법관이 아닌 일반인이 판결문을 검색하거나 열람하려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경기도 일산 법원도서관을 방문하는 것뿐입니다. 열람 대상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대상자 1호는 '검사, 검찰 공무원, 변호사, 법무사, 대학교수' 입니다. 2호는 중앙 및 지방정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 3호는 법원도서관장의 승인을 받은 언론사 소속 기자 등이 포함됩니다. 2주마다 열리는 예약 신청에 성공해 열람하더라도 사건번호 외엔 아무것도 메모할 수 없습니다.
김 교수 등도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에서 폐쇄적인 열람 시스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우선 방문 열람 대상자를 제한한 것 자체가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판을 받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존 판례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아예 차단돼 있으니 문제"라는 겁니다. 또 법원도서관을 이용할 때 과도한 제한이 있다는 점도 문제 삼았습니다.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이 전국에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한 번 이용할 때 시간이 80분으로 제한된다는 겁니다. 열람하고 나선 메모지에 사건번호만 적었는지 확인까지 받아야 합니다. 김 교수는 " 접근성 자체를 완전히 제약하는 것이라 알 권리 침해와 피해 최소성의 원칙 위배라고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판결문 열람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후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각 법원에 사건번호를 전달해 받는 판결문은 'PDF 파일'로 돼 있습니다. 2021년 이후 판결문은 문자열 검색이 가능하지만, 그전에 이뤄진 판결들은 검색도 안 되는 이미지 파일입니다. 시각에 장애가 있으면 본인의 판결문이라 할지라도 내용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김 교수는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 공공기관마저 이러면 어떡하냐"며 "평등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위반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쟁점은 '판결문 수수료' 관련입니다. 법원은 판결문 열람 수수료를 한 건당 1000원씩 받고 있습니다. 비실명화 과정에 비용이 든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미 익명 처리가 완료된 판결문도 똑같이 1000원씩 받고 있지 않느냐"며 "비용이 더 들지 않는 상황에서도 국민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어 피해 최소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반박했습니다.
김 교수 외에도 송민석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박지환 변호사 등이 문제 제기 취지에 공감해 청구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은 헌법소원 외에도 사회운동과 입법 운동을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였을 당시 사법 공약으로 '판결문 공개 확대'를 약속한 만큼, 일반 국민들에게도 판결문 열람이 제한 없이 이뤄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