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락제. 명나라의 3대 황제다.
장자도 아니어서 황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원래 황제였던 조카의 자리를 찬탈해서 황제가 된다.
동시대 조선의 수양대군 세조와 여러모로 비슷......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영토를 넓히고 명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군주라 평가받지만
(tmi: 자금성 만든 황제이기도 함)
잔인한 형벌과 무자비한 숙청으로 비판받는 군주이기도 하다.
명나라 초기인 영락제 때 이뤄진 숙청은 전근대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대학살의 규모가 매우 컸다.
한번 숙청하면 몇만 명 단위로 대학살 당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이건 아버지인 주원장도 그랬고 부자가 대대로 잔인한 대학살극을 엄청 벌임)
특히 조카를 쫓아내고 황제가 되었다보니
원래 황제였던 조카에 대한 동정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가차없이 피바람이 불었다.
허리를 자르는 요참형
사지를 찢는 거열형(우리가 흔히 능지처참으로 오해하는)
생살을 회떠서 죽이는 능지형 등 다양했다.

이때 숙청당한 집안의 딸들은 다 기방으로 보내버렸는데
귀하게 자란 귀족가문 영애들이 하루 아침에 기녀가 되어 겁탈당하다가
결국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됐는데, 이 소식을 보고받은 영락제는
"아기가 크면 (그것들도 창기로 써서) 좋은 돈벌이가 되겠구나!"라며 껄껄 웃었다는
그의 싸패스러운 인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유명하다.

원래 거란족의 형벌이었다가
명나라때 공식 형벌로 수입된 오리지널 능지처참 형벌
(살아있는 사람을 수천번의 칼질로 회 떠서 죽임)
우리나라와 엮인 점이 많은 황제이기도 한데
태종 이방원이 왕자시절에 명나라에 가서
역시 마찬가지로 그 당시엔 곁가지 황자에 불과했던 영락제와 친했다고 하며
특히 조선여인들을 좋아했다고 함
총애하던 조선출신 후궁의 남동생(인수대비 아버지)을 자신의 부마로 들이려 하기도했음
but.... 그 총애하던 후궁이 독살당하자 다른 조선출신 후궁이 그랬다고 오해하여
그 어린 조선인 후궁을 위에 나온 능지형(회 떠서 죽이는 형벌)로 처형하고
나중에 본인의 오해였음을 알게되자 거의 미쳐버려서
궁의 환관과 궁녀들 수천명을 대학살하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함
(어여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