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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 뜨거운 진실, 차가운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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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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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어릴 적의 여름은 뜨거웠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계절이었다. 한두 주 정도의 열대야는 여름 한복판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불편함에 불과했으며, 그 기간만 지나면 어느덧 밤공기 속에 분명히 시원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은 생각보다 일반적이지 않았고 32도였던 어느 날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화제로 언급되었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작년엔 6월 중순 이미 35도가 넘는 기온이 나타났고 올해도 에어컨은 계절의 문턱도 넘기 전에 가동되었다. 다가올 열대야는 이제 일상이 될 것이다. 여름이니까 덥다고, 여름이니까 당연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계절 순환이 아니다. 자연의 흐름이란 반복되지만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더위는 그 균형의 파괴할 정도가 되고 있다. 여름은 지나치게 덥고 겨울은 지나치게 춥다. 또 남은 계절들은 존재감을 잃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불균형한 기후를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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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르 제리코, 앱솜의 경마, 1821, 캔버스에 유화, 92×122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는 1821년 ‘앱솜의 경마(The Epsom Derby,1821)’에서 영국의 경마대회인 앱솜더비를 선보였다. 이 그림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들에게 채찍질을 하며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기수들과 말들의 역동적인 모습으로 유명하다. 

제리코는 프랑스 화가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하며 영국 귀족문화, 특히 승마와 경마에 관심을 갖고 그림으로 나타냈다. 제리코에게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자유와 속도의 화신이었다. 그는 말의 해부학까지 연구하며 더욱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린 말의 동작은 실제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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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달리는 말의 동작, 1872
제리코가 죽고 반세기 후 영국의 사진사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1-1904)는 24대의 카메라를 일렬로 배치해 말이 달리는 동작을 촬영했다. 이 실험은 한순간의 동작을 연속적인 장면으로 기록함으로써 인간의 시각이 놓치고 있던 진실을 드러냈다. 결과는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듯 명확했다. 말은 네 개의 다리를 모두 공중에 띄우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 다리를 쭉 뻗어 자유롭고 강하게 내달리는 제리코의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의 화가들은 보다 사실적인 달리는 말을 묘사하려 했지만 관객들은 낯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의 익숙한 허상을 사실로 여기며 진실된 그림을 ‘잘못된 묘사’라 비난했다. 익숙함은 진실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때로는 진실이 허상보다 설득력이 약하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이상기온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벚꽃이 피는 계절에 눈이 내리고 동북쪽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동남아시아 생물들이 발견된다. 아열대성 곤충과 어종들이 북상하고 있으며, 폭염과 혹한이 불규칙하게 반복된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산업화와 무분별한 자원 소비, 삼림 파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 모든 인위적 행위들이 서서히 자연의 체온을 바꾸어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즘 날씨는 원래 이래”라며 무책임하게 말한다. 그 익숙함이 바로 감각의 마비이며, 진실을 왜곡하는 인식의 오류다. 마이브리지의 사진이 말의 동작을 확인해주었듯이 우리는 이제 날씨라는 익숙한 현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 눈앞의 폭염과 기후 이탈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환경 파괴의 결과이며 지구의 경고음이다. 사실 이상기온은 기후 변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문제는 그것이 점차 ‘정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불편을 기술로 보완하고 계절의 변화는 일상적 피로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조용하고도 끈질기게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다. 현상을 직시해서 원인을 인식하고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우리의 윤리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중략)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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