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흑역사>에서 발췌
선거를 통해 나치가 독일 의회 최대 정당이 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히틀러가 허세에 찬 바보이고 호구이니 똑똑한 사람들에게 쉽게 조종당하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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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달 만에 히틀러는 오히려 나라를 완전히 장악했고, 자신에게 초헌법적 권한과 대통령직에다 의회까지 통째로 넘겨주게 될 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의회를 설득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가 순식간에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게 되었다.
독일의 지도적 인사들은 왜 그렇게 시종일관 히틀러를 얕잡아보았을까? 히틀러의 무능함을 제대로 짚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능함도 히틀러의 야욕 앞에서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히틀러는 정부를 운영하는 능력이 형편없었다. 그의 공보담당관 오토 디트리히는 훗날 회고록 『내가 알던 히틀러』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히틀러는 독일을 12년간 통치하면서 문명국가에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 정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다."
히틀러는 문서 읽기를 질색했다. 보좌관들이 올린 문서는 거들떠보지도 안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잦았다. 부하들과는 정책을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내용으로 일장연설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았다. 말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 했으므로, 부하들에게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히틀러 정부는 늘 난장판이었다. 관료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몰랐고, 누가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 잘 몰랐다. 히틀러는 어려운 결정을 해달라고 하면 결정을 한없이 미뤘고, 결국 느낌대로 결정해버리기 일쑤였다. 그의 절친한 친구 에른스트 한프슈텡글우 훗날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어찌나 종잡을 수 없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렇다 보니 관료들은 나랏일 수행은 뒷전이고 종일 서로 갈라져 싸우고 헐뜯기에 바빴고, 그날그날 히틀러의 기분 상태에 따라 어떻게든 그의 눈에 들거나 그의 눈을 피할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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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엄청나게 게을렀다. 그의 보좌관 프리츠 비데만에 따르면, 그는 베를린에 있을 때도 11시가 넘어서야 일어났고, 점심전까지 하는 일이라고는 신문에 실린 자기 기사를 읽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디트리히가 꼬박꼬박기사스크랩을 가져다주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 자기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하니까 베를린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집무실을 떠나 오버잘츠베르크의 개인 별장에 갔고, 거기서는 당연히 일을 더 안했다. 그곳에서는 아예 오후 2시까지 자기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하는 일은 산책 아니면 새벽까지 영화 보기가 거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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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식함에 콤플렉스가 심했기에, 자기선입견에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이 식견을 말할 때면 폭언을 퍼붓곤 했다. 누가 자기에게 반박하면 "호랑이처럼 격노했다"고 한다. "사실을 말해줘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화부터 내고보는 사람에게 누가 사실을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데만은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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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는 뭔가 치밀한 고도의 기획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아니, 그렇게 엄청난 비극이, 무슨 천재 악당이 사주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벌어질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천재 악당이 눈에 띄지만 않으면 별일 없겠구나, 하고 안심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는 이것이 오판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듭 저지르는 실수다.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인재人災들은 대개 천재 악당의 소행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와 광인들이 줄지어 등장해 이랬다저랬다 아무렇게나 일을 벌인 결과다. 그리고 그 공범은 그들을 뜻대로 부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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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을 잘했고 카리스마가 있었다며 은근히 히틀러를 독재를 할 만한 뛰어난 지도자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특히 남초) 보이는데 실제론 멍청하고 게으르고 과격했음
그러나 멍청한 사람인 걸 알아봤음에도 선거로 선출된 후 나라를 전례없이 엉망진창으로 망침 << 너무 익숙한 광경이고 ptsd 오는 내용이라 슼에 써봄
독재를 할 만한 지도자 같은 건 없고 그저 광인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권력을 막을 수 없었을 뿐임
히틀러는 12년 집권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3년 만에 끝난 건 우리나라의 엄청난 행운이자 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결과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