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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투표해서 기분 좋았지만…" 택배노동자, 다음날 두 배 일감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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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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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509000001850?did=NA

 

연중무휴 로켓배송 쿠팡, 대선일 처음 멈춰
"택배노동자 참정권 보장한 역사적 첫걸음"
배송기사들도 "쿠팡 바뀌나 보다" 반겼으나
휴무 전후로 물량 폭증, 일부에선 '출근 강요'
야간 기사는 휴무 제외··· "앞으로 더 잘되길"

 

"점심은 바빠서 못 먹죠. 아침엔 간단하게 계란 프라이나 두유 정도 먹고요. 오전 7시에 쿠팡 캠프 도착해서 물건 받고 하루 종일 배송한 다음, 집 오면 오후 9시 30분쯤? 사실 밤에 한 끼 먹으니까 폭식하게 돼요. 저만 그런 건 아니고 쿠팡 기사들 아침에 보면 다 얼굴이 땡땡 부어있어요."

서울에서 2년 넘게 쿠팡 퀵플렉서 배송기사로 일한 송정민(가명·47)씨는 말했다. 제21대 대선일 이튿날인 4일 만난 그는 "어제 쿠팡 일 시작하고 처음으로 투표했는데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송정민(가명)씨의 뺨에 땀이 흐르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송씨의 배송 과정에 기자가 동행했다. 그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물건을 들고 계단 위를 달리고, 양손에 물건을 든 채 몸으로 문을 밀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다음 동선을 머릿속에 그렸다.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배송 완료' 인증 사진을 황급히 찍다가 문이 닫히려 하자 손을 밀어 넣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처음에는 보송하던 그의 얼굴에 5분여 만에 땀방울이 맺혔다.

 

송정민(가명)씨가 4일 자신의 1톤 트럭에서 배송해야 할 물품을 황급하게 찾고 있다. 이날만 해도 송씨가 받은 물량은 평소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5일에는 평소보다 2배 가까운 물량이 쏟아져 트럭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남동균 인턴기자

 

이렇듯 촌각을 다투느라 점심 한 끼 챙길 여유 없는 일상이지만, 3일에는 모처럼 숨 돌릴 시간을 가졌다. "남들 쉴 때 같이 쉬고, 가족끼리 모이고, 오랜만에 친구들도 보니까 좋더라고요."

 

'365일 연중무휴 로켓배송'을 자랑하는 쿠팡이 '택배노동자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요구에 부응해, 사상 처음 '주간 배송 휴무'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한진택배 등 기존 택배회사뿐 아니라 지난해 '택배업계 1위'로 올라선 쿠팡까지 업계 전체가 참여한 첫 휴무일이다.

 

매주 딱 하루 쉬는데 대선일 휴무로 대신해

 

쿠팡의 사상 첫 '로켓배송 주간 휴무' 결정에 일선 배송 노동자들은 '쿠팡이 웬일이냐' '쿠팡도 이제 바뀌려나 보다'라며 반가움과 기대감을 보였다. 다만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대선일 전후로 배송 물량이 폭증하는 등 시행착오도 포착됐다. 쿠팡뿐 아니라 CJ대한통운 등 다른 택배회사도 휴무일 이후 배송물량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휴무 결정을 한 것은 쿠팡 본사이지만, 구체적인 현장 대응은 대리점(쿠팡에게 배송 업무를 위탁받은 하청업체) 몫이다. 이에 대리점 중에는 "3일 전후로 휴무일 상관없이 전부 다 출근해서 대기하라"거나, 매주 하루 있는 휴무일을 대선일에 쉰 것으로 대신한 곳도 많다고 한다.

 

쿠팡은 지난 3일 사상 처음으로 로켓배송 주간 휴무를 실시했다. 배송기사들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휴무일 전후로 하루 동안 배달해야 할 물량이 평소의 최고 2배 가까이 폭증하면서, 일부 대리점에서는 사실상 '출근 강요'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진은 한 쿠팡 대리점 관계자가 단체 대화방에서 '6월 4일부터 6일까지 전원 출근하라'고 지시하는 상황. 제보자 제공

 

울산에서 주간조 퀵플렉서로 일하는 박형석(49)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보통 하루 물량이 350개 정도인데 2일에는 70개가 더 나왔고, 오늘(4일)은 평소 1.5배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설 연휴에도 딱 하루 쉬어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부모님 댁을 방문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뿐 아니라 앞으로는 쿠팡이 '8월 14일' 택배 없는 날, 명절 연휴에도 최소한의 쉴 권리를 보장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경남 지역 주간조 배송기사 정재혁(가명)씨도 평소 물량은 400개 중후반인데, 4일에는 700개 후반, 800개로 2배 가까이 물량이 폭증했다고 했다. 그는 "사상 처음 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대리점에서 4~6일 '비상 출근'을 하라고 한다"며 "쿠팡 본사가 휴무일 전후로는 '이형화물'이라도 배송량을 조절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형화물은 중량 25㎏ 이상 가구·에어컨 등 대형화물을 뜻하는데, 쿠팡 규정상 배송 수수료(운임)가 일반 물품과 동일하다.

이번 휴무 대상에서 야간조 배송기사가 빠진 점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 북부 지역에서 퀵플렉서 야간조로 일하는 김길영(가명·54)씨는 2일 오후 8시 무렵부터 3일 오전 7시까지 평소처럼 일한 뒤, 본래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을 쪼개서 3일 낮 투표를 했다.

김씨는 "쿠팡의 휴무 결정은 의미 있다고 보지만, 시작 전부터 야간 배송기사들끼리 '주간 물량이 틀림없이 야간으로 넘어올 것'이라며 걱정했다"며 실제로 평소의 1.5배 정도 업무량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실질적인 참정권 보장이 되려면 야간 배송기사들도 투표 전날 야간 근무는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회적 대화 빠졌던 쿠팡, 논의 참여키로

 

택배업계는 '주6일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과 휴식권 보장을 위한 '8월 14일 하루 택배 없는 날'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로 마련됐던 이유다. 하지만 쿠팡은 이 대책들이 논의된 2020년에는 신생업체라는 이유 등으로 사회적 대화에 불참했다. 그동안 다른 택배기사들은 '택배 없는 날'에 쉬어도, 쿠팡 배송기사들은 못 쉰 이유다.

 

그러나 이제 쿠팡(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은 택배 시장 점유율이 37.6%(2024년 기준)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업계 1위'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에서 참정권 보장 요구가 커지자, 쿠팡은 전격 대선일 주간 휴무를 결정했다. 2014년 로켓배송 시작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특수고용 택배노동자들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 역사적인 첫걸음"이라며 "미국계 자본 쿠팡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노동 권리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도 "선거일에도 배송 업무로 인해 투표 기회를 놓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기본권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며 반겼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쿠팡이 첫 휴무를 시행한 것은 큰 의미"라며 "다가오는 8월 14일, 전체 택배회사가 참여하는 '택배 없는 날'에도 쿠팡이 꼭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선일 하루를 쉰다고 해서 과로사를 조장하는 근본 원인, 장시간·야간노동이 바뀔 수는 없다. 게다가 날로 심해지는 '빠른 배송' 경쟁에, 쿠팡에 이어 CJ대한통운·한진택배까지 올해부터 주 7일 배송을 천명한 상황이다. 이에 쿠팡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도하는 연속·심야노동 해법을 찾기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다.

지난해 총선 때는 '주6일 근무' 탓에 본투표도 사전투표도 할 수 없었다는 송씨는, 올해 대선 참여가 큰 의미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때는 솔직히 노동자들의 환경을 많이 신경 안 쓰셨잖아요. 이번 대통령님은 사회적 약자들은 위한 좋은 정책을 잘 해주시고, 노동개혁에도 많이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도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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