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1540 ~ 1597?)

오늘날의 경기 평택에서 원준량과 남원 양씨의 장남으로 태어남
(참고로 원준량은 사료에 뇌물 수수 건이 다수 기록된 전형적인 탐관오리며, 놀랍게도 윤석열과 생일이 같다)
1567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무관으로서는 능력이 부족해 평판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전해짐
살면서 인간성으로 단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던 인물이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이순신과의 갈등으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음
이순신의 자리를 계속하여 탐하던 원균은 1597년 이순신을 모략하여 파직시키고, 본인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앉게 됨 (이 과정에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은 모친상을 당하나 그로 인해 장례식마저도 지키지 못 했음)
제 주제에 맞지 않는 감투를 썼는데 제대로 굴러갈 리가 있나...
원래도 유흥을 즐기던 원균은 매일같이 기생을 데리고 음주가무를 일삼는 등 직무에 소홀했으며, 출전 지시를 수차례 거부하는 등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모습을 보여줬음
(군대를 다녀온 덬들은 다 알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명은 군대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다)
이에 극대노한 권율의 지시로 원균은 곤장을 맞게 되는데, 현대로 치면 해군참모총장이 공개적으로 엉덩이를 까고 속된 말로 빠따를 맞은 꼴임
상상이나 됨?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술을 즐겼고 또 쳐먹는 건 얼마나 좋아했는지 한끼 식사로 밥 10공기, 생선 5마리, 닭 3~4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워낙에 뚱뚱해서 도저히 말을 탈 수가 없던지라 육군이 아닌 수군으로 발령받았음
뚱뚱해서 말을 못 탔다는 게 과장된 기록이 아닌게, 조선 시대의 말은 쬐그만한 조랑말이었던 터라 체구가 비대한 원균을 타고 달리기엔 어려웠을 것임
그리고 운명의 1597년 7월 15일,

일본 수군에 의해 칠천량 해전이 발발하였음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휘관인 원균의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전술로 인해 조선 수군은 6년의 전쟁 도중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를 맞았으며 조선 수군은 12척의 배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잃었음
그리고 원균은 더 이상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아 놓고, 죗값도 치르지 않았단 소리가 됨
조선의 공식 입장은 원균은 이때 전사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정말 원균이 전사했다고 보기엔 의심스러운 점이 너무 많다는 것임
일단 원균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 했고(그래서 원균의 묘는 가묘임), 전국 각지에서 도망다니는 원균을 봤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음
뭐 살아있다고 해도 원균은 대패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피할 수 없었을 거니까, 처벌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리가 됨

그렇게 원균은 뼛속까지 무능하고 인성도 형편없는 주제에 권력욕만 있는 인간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어떠한 결말을 맺는지를 보여주었음
그래놓고 아직까지도 명장이었다느니 하면서 옹호하는 새끼들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관 속에서 뛰쳐나와 아가리 찢어버려도 무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