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군부대 사칭해 보낸 허위공문 군부대를 사칭해 식당에 보낸 공문. 공문형식도, 심지어 대대장 이름도 달랐다. |
| ⓒ 김동이 |
사건은 지난 5월 22일 태안읍의 한 식당주인이 군부대 관계자라고 밝힌 이와 통화하면서 시작됐다. 다음날인 23일 저녁 삼계탕 30그릇을 예약한다는 전화였다. 이 식당주인은 같은 날 오후 7시 16분 위와같은 문자와 '부대 거래 확약서'라는 공문서도 받았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더 어려워진 경기는 지역경제에는 쓰나미 처럼 밀려와 태안읍 내에는 밤 9시만 넘어도 거리를 지나는 행인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단체손님 문자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고마운 예약전화에 단체예약과 군부대에서 보내준 문자와 공문서를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식당은 군부대에서 예약한 30명의 손님을 받을 만큼 뚝배기나 삼계탕 재료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 이에 해당 식당주인은 예약전화를 받은 당일 그릇가게로 가서 뚝배기를 새로 샀다. 그리고, 삼계탕 재료인 삼계닭과 쌀 10kg, 녹두를 구입했다. 삼계닭은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냉장 보관했고, 녹두는 껍질을 까서 준비해뒀다. 오랜만의 단체예약 손님에 30그릇의 삼계탕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든 줄도 몰랐다.
군부대의 예약문자를 받은 22일 저녁 한무리의 손님들이 이 식당을 찾았다. 평소에도 단골손님이었던 이들은 태안군청 공무원들이었다. 저녁을 먹던 이들은 군부대로부터 단체예약을 받았다는 이 식당주인의 말에 해당 문자와 공문서를 확인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일행 중 태안군청 행정지원과에 근무하고 있는 이진선 주무관은 곧바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주무관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 소상공인들, 특히 식당을 대상으로 한 노쇼 사기사건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의심이 갔다"면서 "지역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노쇼가 아닌 단체예약이었기를 기대했지만 사실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이 주무관을 비롯한 4명의 일행들은 공문서의 진위에 대해 먼저 파악했다.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고, 평소 알고 있던 군인들한테도 연락했다. 사실 확인결과 공문서에 적힌 해당 부대는 충남 청양군 일원에 위치한 부대는 맞았지만 공문서에 적힌 담당자인 '박00 대위'가 근무하고 있지 않고 해당 부대의 대대장 이름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위공문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충남 청양군에 위치한 부대에서 2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태안군의 식당으로 삼계탕을 예약한 사실 또한 의심을 샀다. 예약전화도, 문자도, 공문서도 모두 노쇼 사기사건임을 알게 된 해당 식당주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큰 피해를 막아준 공무원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노쇼 사기피해를 막는데 적극 나선 이진선 주무관은 기자와 만나 "요즘 이런 사건이 많은데다 가뜩이나 지역경제도 어려운데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함께 식당에 갔던 4명 일행 모두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서서 노쇼 사기임을 확인해 피해를 막을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덧붙여 "시장에 어르신들이 많아 앞으로 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군 경제진흥과에도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인회를 통한 예방교육도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면서 "2020년 3월에 태안군청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5년이 됐는데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보람찬 일이었다.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동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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