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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여자팀엔 남성 사령탑 많은데, 왜 남자팀엔 여성 사령탑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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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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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기회를 받고, 도전할 수 있다."

지난 3월 18일. 이틀 뒤 열리는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1승만 더 올리면 여자 프로농구(WKBL) 최초로 '여성 우승 사령탑'이 되는 BNK썸 박정은 감독이 당시 한 말이다. 단순히 개인의 영광 이상을 의미하는 발언이었다. WKBL 6팀 중 유일한 여성 사령탑인 그가 좋은 성과를 내야 감독 자리에 여성이 더 많이 올라설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박 감독은 이틀 뒤인 20일, 임무를 완수했다. 통산 9회 우승에 빛나는 '우승청부사'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우리은행을 55-54로 꺾고 첫 여성 우승탑이 됐다.

하늘도 그의 간절함에 응답한 것일까. 우승이 결정되기 불과 몇 시간 전, 신한은행은 신임 감독 자리에 최윤아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코치를 선임하며 1986년 창단 이후 구단 역사상 최초로 여성에게 사령탑 자리를 맡겼다.

여자팀엔 남성 지도자 많은데, 남자팀엔 여성 지도자 0명

여성 스포츠에서 여성 감독 비율은 얼마나 될까. 2024년 5월 22일 기준, 프로·실업팀이 있는 한국의 여자 구기 종목 중 축구·농구·배구·핸드볼, 소프트볼에서 여성 사령탑의 비율을 계산해 봤다. 결과는 37.1%(35명 중 13명)였다. 반면, 남성 프로·실업팀에서 같은 성별인 남성 사령탑 비율은 100%였다. 여자팀에 남성 지도자의 비율은 10명 중 6~7명인데, 남자팀에서 여성 지도자의 비율은 10명 중 0명이다.

세미프로로 운영되고 있는 여자축구(WK리그) 8팀 중, 여성 사령탑이 있는 팀은 총 5개다. 경주한수원(송주희 감독), 문경 상무(이미연 감독), 서울시청(유영실 감독), 창녕 WFC(안태화 감독), 화천 KSPO(강선미 감독)가 2025시즌 여성 사령탑 체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여자 프로농구(WKBL)는 총 2명이다. 총 6팀 중 BNK썸(박정은 감독)과 신한은행(최윤아 감독)이 여성 감독을 선임해 2025~2026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 대회 성적이 좋았음에도 여자배구와 여자 핸드볼의 여성 사령탑 비율은 현저히 낮다. 여자 프로배구(V리그) 7팀 중 장소연 감독(광주 AI페퍼스)과 일본 국적의 요시하라 토모코(흥국생명) 감독뿐이다. 실업팀 형식으로 운영되는 여자 핸드볼 역시 8팀 중 인천광역시청(문필희 감독)이 유일하다.

소프트볼은 어떨까. 실업팀으로 존재하는 소프트볼 6팀 중 충북야구소프트볼협회(조경애 감독), 대구도시개발공사(김윤영 감독), 경기도소프트볼협회(최하나 감독)만 여성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소프트볼은 남성 실업·프로팀이 전무한데도, 실업팀 감독 50%를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소프트볼 여성 지도자 A씨는 이 부분에 대해 "남자 감독님들은 야구인 출신이고, 지금 여성 감독님들은 소프트볼 1세대 선수 출신"이라며 "이제 여성 사령탑이 탄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을 향한 '유리천장'은 존재한다고 본다"고 했다.

지도자를 인터뷰하고 결정하는 임명권이 있는 구단 수뇌부(구단주, 사장, 단장)는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돼 있다. 단 수뇌부가 남성이라고 무조건 여성을 임명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여성 지도자가 선임될 확률이 낮아지는 건 분명하다. 스포츠 현장에서 감독 선임은 종종 명확한 기준이나 데이터보다는 인맥, 평판, 기존 네트워크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네트워크 자체가 남성 중심이라면, 여성은 애초에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경력직 우대 프로세스도 여성 지도자가 나오기 힘든 현실에 악순환을 반복한다. 대부분의 구단은 새로운 사령탑을 결정할 때 후보군부터 추린다. 이때 해당 종목 감독이나 코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우대 받는다. 자연스럽게 코칭스태프 경험이 적은 여성 지도자들은 배제된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이렇게 후보군 3~5명을 추린 뒤, 사장과 단장은 후보자 인터뷰를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 후보자는 1명이거나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여자농구 박정은 감독의 사례가 이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준다. 그는 개인 성취 이상의 의미를 자신에게 부여하며 우승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 박 감독이 스스로 "내가 잘해야 다음 여성 지도자가 기회를 얻는다"고 말한 이유도 이 구조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서다.

'루니 룰' 만들자, 달라진 미국 미식축구

그래서 미국 미식축구(NFL)에 등장한 법이 있다. 선수 분포의 70% 이상이 흑인인 반면, 흑인 감독은 고사하고 코치도 드문 NFL에서 감독이나 구단 고위직을 채용할 때, 반드시 소수 인종 후보를 인터뷰하도록 요구하는 정책이 탄생한 것이다. 바로 '루니 룰(Rooney Rule)'이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전 구단주 댄 루니가 2003년 이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해 이름 붙여졌고, NFL 규약으로 명시됐다. 루니 룰 도입 이후 흑인 지도자는 2002년 2명에서 2006년 7명까지 증가했다. 이 규약은 2022년 여성에게도 확장됐다. NFL은 2022년부터 모든 팀이 공격 코디네이터급 이상을 채용할 때 여성 또는 소수 인종 후보 1인 이상을 인터뷰하도록 수정했다. 그 결과, 2021년 기준 NFL엔 12명의 여성 코치가 활동하고 있다.

국내 스포츠도 리그나 협회가 앞장서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할 보호책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다양한 스포츠연맹에선 여성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IOC는 '여성 스포츠 리더십 프로그램(Women in Sport Leadership Programme)을 2021부터 개시했고, 유럽축구연맹(UEFA)은 '여성 코치 발전 프로그램(Women's Coach Development Programme)'을 2016년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성 스포츠 이미지가 강한 '야구'도 서서히 변화 중이다. 2020년 킴 응(Kim Ng)이 북미 4대 스포츠(MLB, NFL, NBA, NHL) 전체를 통틀어 첫 여성 단장으로 임명되면서 MLB 내에서 여성 채용이 이슈가 됐다. 킴 응의 등장 이후 MLB에서 여성의 주요 보직 등장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20년엔 미국 프로야구인 메이저리그(MLB) 최초 정식 여성 코치가 임명되기도 했다. 얼리사 내킨(Alyssa Nakken)이 2020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루 베이스 코치로 임명됐고, 2022년엔 MLB 정규시즌 경기에 필드로 나온 최초의 여성 코치로 이름을 남겼다. 얼리사는 현재 클리블랜드 가디언즈에서 선수육성보조코치로 일하고 있다.

MLB는 2017년부터 미국 야구협회(USA Baeball)와 '여성 야구 육성 프로그램'을 지원 중이다. '여자야구 개척 프로그램(Trailblazer Series)', '여자야구 유망주 성장 캠프(Girls Baseball Breakthrough Series)'가 그 예다. 또 MLB는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 부서를 운영하며, 구단 내 여성 리더 비율이 포함된 연례별 보고서를 발행한다. 더불어 각 구단의 채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 인터뷰를 포함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배구연맹(FIVB)은 2026년부터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 나서는 여자대표팀에 여성 코치를 최소한 한 명은 꼭 둬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결과'의 평등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변화는 제도와 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는 한국 스포츠계도 여성 지도자 육성을 위한 명확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많은 이들이 동일한 출발선을 제공하는 것을 '공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스포츠 현장에서의 여성 지도자 문제는 애초에 출발선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하게 코치나 감독직을 꿈꾸더라도, 실제로 경험을 쌓고 역량을 입증할 기회부터 현격히 차이 난다.

그러므로 단순히 여성에게도 도전할 '자격'을 주는 차원을 넘어, 실제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과 '결과'의 평등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 여성 전용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의 확대 ▲ 여성 코치·감독에 대한 평가 기준의 명문화 ▲ 여성 지도자 임명 시 인센티브 제공 등 유인책 마련 등의 방안은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스포츠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여성 지도자의 도전과 성취를 단순히 '이례적 사건'으로 다루기보다는, 전문성과 리더십의 측면에서 조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여성=예외적 존재'라는 인식을 넘어서 '여성=당연한 후보'라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입니다.
황혜정


전문 https://naver.me/FLeXjH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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