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올해도 어김없이, 연예계에 ‘정치색’ 경계령이 내려졌다. 예능인이건 배우이건 아이돌이건, ‘색깔’을 읽어 내려는 시도가 집요하다. 개인 계정 게시물의 이모티콘 색깔, 옷 색깔, 과거의 한마디까지 끄집어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대중은 점점 더 예민해진다. 팬심과 표심이 겹치는 시대에서 연예인의 행동과 발언 하나하나는 ‘정치적 메시지’로 소비된다. 이젠 옷 색깔까지 ‘의심’의 대상이 되는 시대, 단지 특정 색 계열의 의상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색 논란’이 불거진다.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숫자 ‘2’가 적힌 점퍼를 착용한 사진을 게재해 정치색 논란에 휩싸였다.
27일 카리나는 개인 채널에 장미 이모티콘과 함께 일본 길거리에서 숫자 2가 적힌 빨간색 점퍼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
논란이 이어지자 카리나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후 팬 소통 플랫폼 버블에 해명글을 올렸다.
28일 카리나는 “마이(팬덤명), 걱정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며 “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계속 오해가 커지고, 마이가 많이 걱정해서 직접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앞으로는 저도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행동하겠다. 다시 한번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도 “단순히 일상적인 내용을 게시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이나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해당 게시물로 심려 끼쳐드린 점 사과 드린다. 아티스트의 뜻이 왜곡돼 특정 의도로 소비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룹 코요태 멤버 신지는 자신의 사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한 누리꾼에게 분노했다.
이에 신지는 “이게 언제적 사진인데”라며 “정치색과 무관하게 행사 끝나고 지나가는데 사진 찍어드린 것 같은데 사용하시면 회사에 전달하고 법적조치 들어가겠다. 사진 내리세요”라고 직접 댓글을 남겼다.
신지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소속사에서도 놓칠 수 있다. 이건 소속사의 잘못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잘못이다. 소속사 탓을 하지 말아 달라”며 “법이 더 강하지 못해서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것 같은데 매번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당하기만 하는 건 너무 억울해서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갈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논란이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다는 데 있다. 한 연예인이 평소 스타일대로 입은 붉은색 재킷은 어느새 특정 정당의 상징색으로 해석됐고, 별다른 맥락 없이 찍은 사진 하나도 “지지 표현”이라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현시점에서 벌어지는 ‘색깔 해석’은 의도 없는 무심한 선택까지 정치적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종의 비논리적 마녀사냥에 가깝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선거철에는 무채색이 안전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간다. 투표소나 일상 속 보여지는 의상 색깔이 특정 정당 컬러와 비슷하면, 해당 정당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 그 이유.

가수 송가인과 국민MC 유재석은 과거 더불어민주당 지지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송가인은 2020년 4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채널에 공개된 ‘2020 국회의원 선거 잘 뽑고 잘 찍자’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푸른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등장해 “더불어민주당 지지를 표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유재석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파란색 모자와 청바지를 착용하고 투표소에 등장해 특정 정당 지지 논란에 휘말렸다. 두 사람 모두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상이 파란색이라는 점에서 “의상으로 지지의 뜻을 밝힌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에 예민한 시기일수록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과도한 낙인과 무분별한 추측은 우리가 지키려는 건강한 정치문화의 본질을 흐려놓을 뿐이다. 연예인에게 ‘색깔’을 금지하는 분위기 속, 진짜 금지된 건 ‘표현의 자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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