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신의 여왕이다. 25년 동안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대중의 마음속에 깊숙이 안착한 홍수현. 때로는 욕망 가득한 악녀로, 때로는 사극 속 비련의 여인으로.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스펙트럼을 쌓아온 그가 최근 첫 호러물 주연작 '동요괴담'으로 칸 영화제에 입성하며 반오십 년 연기 내공의 정점을 찍었다. 이렇다 할 공백기 없이 조연, 주연 가리지 않고 열일을 이어온 홍수현의 진가가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칸의 여신' 수식어를 추가한 홍수현, 그의 연기 길에 화려한 레드카펫이 깔렸다.
얼마 전 '동요괴담'으로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칸에 참석했는데,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칸이라는 큰 무대에 서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마 모든 배우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자리일 거예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됐다는 게 정말 가슴 벅찼어요. 놀랐던 부분은 의외로 많은 해외 팬들이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사인 부탁하는 외국 팬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신기했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K-문화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게 확 와닿더라고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동요괴담'이 첫 호러물 도전작이잖아요.
첫 호러물이었어요.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작품이라 좋았어요. 남부럽지 않게 살던 한 여자가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통해 잊고 지내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공포에 휘말리는 이야기예요. 공포스러우면서도 삶의 진정성과 운명에 대한 윤리적 대가에 대한 교훈을 꼬집는 작품입니다.
'동요괴담'에서 특별히 중점을 두고 연기한 부분이 있을까요?
'동요괴담'은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인데, 저는 그중 '똑같아요' 에피소드에서 1인 2역을 맡았어요. 외형은 같지만 각기 다른 인물의 감정과 성격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감정선이 섞이지 않도록 집중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어요. 무엇보다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그 누구의 삶도 대신 살 수 없으며,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참 와닿더라고요. 저에게도 큰 울림을 준 작품이라, 보시는 분들에게 진심이 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1인 2역 연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동요괴담' 찍는 기간 동안엔 제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이 작품에만 집중했어요. 두 인물의 미묘한 차이를 명확하게 표현하려면 굉장한 몰입도와 집중력이 필요하더라고요. A와 B를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번갈아가며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몰입이 깨지면 안 됐어요.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발성이나 눈빛, 말투 등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썼어요. 두 인물의 감정선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캐릭터를 혼동할 수도 있으니까요.
올해 상반기부터 흥행작을 터트렸잖아요. SBS '보물섬'이 시청률 15.4%로 종영했는데, 대본 받았을 때부터 이렇게 잘 될 줄 예상했나요?
솔직히 조금 했습니다(웃음). 대본 받았을 때부터 '진짜 재밌겠다'라고 생각했고, 찍으면서도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즐거웠어요. 아마 '보물섬'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 신나게 찍었을 거예요. 연기 잘하는 분들이 한 곳에 모이니까 어떤 신을 찍어도 티키타카의 맛이 제대로 살더라고요.
욕심 가득한 차국희 캐릭터가 이상하게 밉지 않았던 이유는 배우 홍수현의 디테일한 연기 덕분인 것 같아요. 염두에 두고 연기한 건가요?
이런 말 쑥스럽지만, 감독님도 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캐스팅하셨대요. 국희는 빌런이긴 하지만, 김정난 선배님과는 다른 결의 악역으로 비치길 원하셨어요. 국희는 세 보이려고 기를 쓰지만, 사실은 전혀 힘이 없는 캐릭터예요. 그런 철없는 모습이 귀엽게 보이길 바랐어요. 메이크업은 센 언니처럼 진하게 하되, 행동은 밉지 않게 보일 수 있도록 연기하려 노력했죠.
찍어두었던 작품들이 올해 몰아서 베일을 벗네요. 하반기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공개도 앞두고 있잖아요.
복수극, 공포물에 이어 힐링물을 보여드리게 됐는데요. 이 작품에선 사랑스러운 매력을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여행과 일상을 다룬 작품이라 그런지 현장 분위기가 되게 즐겁고 편안했어요. 좋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서 촬영장 가는 게 저에게도 힐링이 되더라고요. 유준상 선배님과 러브라인도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웃음).
일터에서 힐링을 얻는다니, 연기를 정말 즐기는 게 느껴지네요.
일할 때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편이에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걸 완벽하게 해냈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 못 해요. 반대로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주시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맡겨주시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신이 적거나 없을 때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20대 땐 '청순 여배우' 이미지가 강했는데, 30대 접어들면서부터 연기 폭이 확 넓어진 느낌이에요.
20대 땐 사실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연기 경험도 부족하다 보니 오는 역할들의 폭이 넓지 않았거든요. 서른이 넘고부터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캐릭터 도전 정신이 강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시도해왔더라고요.
연기 변신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그런 거에 대한 거부감 '1'도 없어요. 악역 맡는 것도 정말 재밌어요. 눈에 확 띄고 개성 강한 게 좋더라고요. '보물섬'에서도 사실 분량이 많지 않았어요. 근데 캐릭터가 강하니까 잘 봤다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기억해 줄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할 때 신나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요.
장르가 있다기보다는 글로벌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어요. OTT 작품들도 많아지고, K-콘텐츠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시대가 됐잖아요. 다른 언어로 연기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20대 모습 그대로예요. 뱀파이어라는 설도 있던데요.
어휴, 그렇지 않아요. 많이 늙었어요. 팔자 주름도 깊어지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요. 20~30대 땐 하루에 약속 두세 탕씩 뛰어도 에너지가 남아돌았는데, 이제는 힘들더라고요(웃음).
'관리 끝판왕'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동안 관리 비결을 안 물어볼 수가 없어요.
운동 정말 열심히 해요. 웨이트는 거의 매일 하고 있어요. 그거 말고는 가끔 피부과 가는 거. 1년에 한두 번 정도 리프팅 하고... 그 정도예요. 식단 관리를 대단히 철저히 하는 것도 아니고, 물을 많이 마신다거나 그런 노하우도 딱히 없어요. 아, 선크림 항상 발라요. 너무 기본적인 건가요?(웃음) 굳이 말씀드린다면, 1분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 거? 얌전히 누워있고 이런 거 잘 못해요. 집에서도 정리를 하던, 청소를 하던 뭐라도 해야 해요.
연기 인생 25년,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그려가고 싶나요?
지금까진 드라마 위주로 출연해왔는데, 앞으론 영화도 다양하게 찍고 OTT 작품도 하면서 좀 더 폭이 넓은 배우가 됐으면 해요. 무엇보다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뻔한 말 같지만, 연기자는 연기를 잘할 때 가장 멋있고 빛이 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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