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씨는 “지난해 10월 국가기록원에 요청해 진술 기록 등을 봤는데, 보안사에서 치욕을 겪으면서도 차마 영혼까지 팔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대학으로 복학한 그를 1984년 12월까지 사찰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2002년 한의대에 편입해 한의사가 된 그는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는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칠순 때 씻김굿을 하듯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 자서전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18일 자신들을 숨겨줬던 이화여대 경비원 아저씨의 아들(60)도 찾아서 만났다. 그런데 경비원 아저씨가 국가유공자인데도 불가피한 사정으로 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했다는 말을 아들로부터 전해듣고 안타까웠다. 그는 “국가보훈처에 안장 가능한 지 등을 문의해 고인의 위패를 지난해 9월 초 서울 현충원에 봉안했으며 훗날 부부 합장으로 현충원 안장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들었다.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던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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