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2025년 5월도 반이나 흘렀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무색하게, 매달 새로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 변신을 마치 전시장이라도 차린 듯 필모그래피를 쌓아옿린 배우가 있다. 다섯 작품과 다섯 인물. 각기 다른 얼굴로 시청자와 마주한 배우 이준영이다. 놀라운 건 다작 그 자체보다, 전혀 겹치지 않는 캐릭터의 결을 모두 살아 숨 쉬게 만든 그의 연기력이다.
올봄 이준영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금명(아이유)의 첫 번째 남자친구로 모성애에 얽매인 유약한 청년 박영범을 연기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와 그런 연인의 어머니가 힘겨운 연인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는 찌질한 순애보의 얼굴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2'에서는 광기 어린 빌런 금성제로 돌변해 소름을 안겼다. 현재 방송 중인 '24시 헬스클럽'에서는 보디빌더 출신 헬스장 관장 도현중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 벌크업까지 감행하는 등 육체적 존재감마저 새롭게 다졌다.
'넷플릭스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2025년 상반기 이준영의 활약은 폭발적이다. '멜로무비' '폭싹 속았수다' '약한영웅 Class 2'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세 편에 tvN 사극 '원경'과 현재 방송 중인 KBS2 수목드라마 '24시 헬스클럽'까지 총 다섯 작품을 통해 시청자를 만났다. OTT와 지상파, 현대극과 사극, 멜로와 액션을 넘나드는 장르 스펙트럼은 물론 그의 캐릭터들도 눈빛 하나, 호흡 하나 겹치는 법 없이 다채롭다.

'멜로무비' 속 이준영이 연기한 무명 작곡가 홍시준은 조용하고 애잔하다. 오래된 연인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버거워하며 결국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청년. 그와 비교하면 '폭싹 속았수다'의 박영범은 모성에 짓눌려 결국 연인과의 이별을 택하는 인물로 유약한 면모가 드러난다. '약한영웅 Class 2'의 금성제는 말 그대로 통제 불능의 캐릭터다. 냉소와 광기를 오가며 쾌락을 좇는 빌런으로 분해 일진들의 세계에서 군림한다. '24시 헬스클럽'에서는 한껏 부풀어 오른 몸으로 표정을 자유자재로 쓰며 'B급 감성'까지 소화한다. 열거한 캐릭터들 모두 2월부터 5월까지 공개된 작품들 속에서 존재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시청자는 자연스레 이준영이 연기한 캐릭터들을 비교하게 됐고, '완벽한 변신'에 감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처럼 촘촘히 공개된 다작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인물들을 이어서 연기해낸 이준영의 역량은 높이 살 만하지만,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할 가능성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싹 속았수다'에 마음이 남아있던 이들이라면, 금성제를 마주하는 순간 감정의 충돌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박영범을 지우기도 전에 금성제가 밀려오고, 두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도현중이 덮쳐온다. 다작은 배우에게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지만, 시청자에게는 피로감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가진 감정의 온도가 서로 다르기에, 이를 구분할 시간 없이 연이어 공개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캐릭터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준영의 연기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성장 스토리'에 있다. 2014년 유키스(UKISS)로 데뷔한 그는 2017년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로 연기에 입문했다. 당시 이요원과의 호흡은 단순한 '연기력'을 넘어 '호감도'를 획득한 출발이었다. 이후 여러 작품을 통해 연기적 성장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은 그는 'D.P.'시즌1의 탈영병 전현민, '마스크걸'의 문제적 아이돌 최부용 등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존재감을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아니면 캐릭터 자체를 바꾸려 했다"라던 '약한영웅 Class 2'의 한준희 감독의 말처럼, 이준영은 이야기의 흐름에 필요한 중심 인물로 올라섰다.

분명 이준영은 '연기 변신'의 재미를 아는 배우다. 다양한 얼굴로 시청자를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낸 경험까지 갖췄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변신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드라마 업계 특성상 작품의 공개 시기를 배우가 통제하기란 어렵지만, 특별출연이란 이름 아래 짧은 기간에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달아 선보이는 방식은 시청자의 몰입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가 보여준 연기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는 시간, 한 작품의 여운이 다음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야 말고 그의 연기력에 더 큰 시너지를 줄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다섯 개의 자아를 오가며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준영. 그 여정엔 철저한 준비, 연기에 대한 진심,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결정이 있었다. 지금의 그는 분명 '변신의 아이콘'이지만, 이제는 그 변신을 넘어서는 단계를 준비할 때다.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확신을 단단히 쌓아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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