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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도깨비> 그 쓸쓸하고 난감한 욕망(feat 원조교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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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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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황진미의 티브이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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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이하 <도깨비>·티브이엔)는 한국 민담 속의 도깨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태양의 후예>(한국방송2, 4월 종영)를 만든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피디의 후속작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드라마에는 놀라운 재미가 숨어 있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문화방송, 2007)에서 한껏 매력을 과시하던 공유의 깊어진 눈매와 패션화보에서 나온 듯한 댄디한 옷차림, 영화 <은교>(2012)에서 청신한 매력을 뿜어내던 김고은의 투명한 연기, 여기에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스비에스, 2012)에서 김은숙 작가가 구사했던 유복한 남자들끼리 티격태격하는 허당스러운 대사들까지 일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재미들 중 백미는 독특한 판타지의 설정이다.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매 등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천년의 세월과 대륙 간 순간이동은 물론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는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상력은 인어 이야기를 차용했지만 딱히 새로운 게 없는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스비에스, 방영중)에 비해 높이 평가할 만하다.

도깨비 등 호러물에나 등장할 법한 존재를 내세워 십대 소녀와의 로맨스를 엮는 것은 영화 <트와일라잇>(2008) 이후 그리 낯설지는 않다. 문제는 이질적인 캐릭터들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있다. 가령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는 고유의 비장미와 잔혹함은 사라진 채, 부자이자 미남이며 영원한 젊음과 강한 육체를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흡사 마약이나 줄기세포로 육체적 힘을 보강한 특권층을 보는 듯하다. 그 결과 뱀파이어와 평범한 소녀의 사랑은 그저 소녀의 소망 충족적 판타지로 읽힌다. 뱀파이어 소스를 끼얹은 할리퀸 로맨스에 불과한 것이다. <도깨비>에도 그런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에스비에스, 2013)의 외계인이 그러하듯, 도깨비 역시 부자에 미남이고 여러 초능력을 지닌데다 지독한 순정남으로 소녀의 백일몽을 충족시켜줄 만한 캐릭터다. 하지만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듯이, 드라마는 도깨비의 페이소스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고려의 전쟁영웅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어 가슴에 검이 꽂힌 채 불멸의 존재로 살아간다. 일생 동안 검을 뽑아줄 도깨비 신부를 찾아다니지만, 막상 만나자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검 뽑기를 망설인다. 검을 뽑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연은 비장하고 역설적인 매력을 품는다. 도깨비 신부인 소녀의 운명도 예사롭지 않다. 엄마의 뱃속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신의 은총으로 살아나 귀신들에 둘러싸여 자란다.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한 고아로, 이모와 사촌들에게 구박을 받는 신데렐라 신세다. 이쯤 되니 글로벌한 재벌에 멋진 차림의 삼십대 ‘아저씨’에게 “오백만원만 해 달라. 같이 살자. 애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낯간지러운 대사를 날리며 속없이 웃어도 대략 이해가 된다. 소녀의 행복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갑갑한 현실의 비상구를 통과하니 이국적 풍경이 펼쳐지는 장면이 보여주듯이, 이질적인 두 세계를 즉각적으로 맞물려 놓는다. 소녀가 겪는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끔찍한 현실이 고급스러운 외양의 마법적 판타지와 포개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욕망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이 이면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얄팍한 오해라는 이중의 속임수를 쓴다. 이를 통해 10대 소녀를 향한 30대 남성의 욕망이 가려진다. 즉 드라마는 원조교제의 외양 속 운명적 사랑이라는 겉감과 안감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쩌면 뒤집힌 구조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운명적 사랑이라는 판타지가 겉감이고, 원조교제의 욕망이 안감일 수 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욕망을 그리면서, 판타지로 구축된 아름다운 세계를 맞물려 놓음으로써 알리바이로 삼는 방식이 종종 시도된다. 최근의 영화 <가려진 시간> 역시, 의붓아버지와 외지에서 단둘이 사는 소녀와 삼십대 남성의 사랑이라는 외피 안에, 시간의 멈춰짐으로 홀로 나이든 소년이라는 판타지를 맞물린다. 관객들은 둘만이 서로를 알아보는 사랑을 응원하며, 남성에게 아동성애의 혐의를 덧씌우는 세상의 오해를 배척하게 된다. <도깨비>는 <가려진 시간>보다 더 정교하고 체계적인 판타지를 제시하며 십대 소녀와 삼십대 남성의 사랑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구백 살이 넘은 남자이니 나이도 무의미하고, 소녀와의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도 사회적 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풀어냄으로써 죄의식의 환기를 막는다. 


드라마는 판타지를 통해 아슬아슬한 금기를 넘어서지만, 곤궁한 십대 소녀가 부유한 삼십대 남성에게 같이 살자 매달리는 장면은 기이한 잔상을 남긴다. 드라마가 끝나면 온갖 착취와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구백 살 먹은 아저씨와의 만남을 꿈꾸기보다, 소녀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게 낫지 않을까. 공유의 슈트발보다, 소녀에게 아저씨도 왕자도 필요없는 사회의 비전이 더 멋질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8&aid=0002346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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