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고위 성직자인 몬시뇰이며 교황청 과학원 원장이기도 함
수학박사, 천문학석사, 물리학박사임
학부는 신학
가톨릭 사제가 된 이후 조르주 르메트르는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 당 대학 천문학 교수였던 아서 스탠리 에딩턴의 연구 조교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천문학에 적용하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MIT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할로 섀플리 지도 하에 학위를 마친다. 일련의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을 천문학에 적용할 아이디어와, 우주가 팽창한다는 실질적인 증거들을 확신하게 된다(은하간의 거리 등).
벨기에의 뢰번 가톨릭 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을 가르치던 르메트르는 1927년 즈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의 해(다양체의 계량)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주의 팽창이 수학적으로 가능함을 보였고, 허블의 법칙을 유도했다.(소련의 알렉산드르 프리드만도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오늘날 르메트르-프리드만-로버트슨-워커 계량으로 알려진 해를 연구했다.) 관측을 통해 팽창의 증거를 실제로 확인하고 허블 상수를 계산한 것이 2년 뒤의 허블이며, 후에 르메트르는 이를 발전시켜 빅뱅 우주론(더 나아가 우주의 가속 팽창)을 제안한다. 조지 가모프 역시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르메트르의 회상에 따르면, 허블의 관측 전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 이야기했을 때 그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나, 물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프리드만이 비슷한 계량을 얻었다는 소식도 르메트르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허블의 발견이 알려진 후에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의 결과를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에딩턴과 함께 미국에 그의 연구가 알려지도록 힘을 썼다.
그러던 와중 허블이 우주팽창의 발견으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고, 르메트르의 논문도 1931년에 영어로 번역됐다. 그런데 르메트르는 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주 팽창과 관련된 부분을 빠트렸다. 여기에 대해서는 르메트르가 논문 편집자에게 보낸 코멘트가 있는데, 허블 법칙과 관련된 부분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 영어 번역본은 '허블이 이미 인기 스타가 된 뒤인 1931년에 나왔기 때문에 이미 널리 밝혀진 사실을 다시 쓸 필요가 없다'고 본인이 판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과학적 발견을 하는 데 첫 번째 발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의 발견은 비교적 덜 알려진 채, 허블만이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뒷사정으로 인해 현대에도 몇몇 학자들은 "허블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2018년 10월 26일 국제천문연맹(IAU)은 모든 회원들의 전자 투표 결과 78%의 찬성을 얻어 허블의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La science est belle, elle mérite d’être aimée pour elle-même puisqu’elle est un reflet de la pensée créatrice de Dieu.
과학은 아름답습니다. 과학은 하느님의 창조적인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조르주 르메트르의 평소 생각이자 장례식 문구 중 일부
* 여담
교황청 과학원의 전신은 린체이연구소인데 이 연구소의 초대소장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교황청 과학원의 회원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부터 전해지는 린체이연구소의 후배가 되는 것이 된다.
교황청 과학원은 약 400년 전인 갈릴레이 시대부터 자연세계를 보는 교황의 눈과 귀가 되는 조직이다. 약 8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종신회원이다. 구성원은 그들의 과학 실력만을 보고 선택되며, 국적과 종교 등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
한편, 교황청은 이 과학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와 토론에는 전혀 간여하지 않는다. 회원들은 2년에 한 번씩 총회를 열고 가끔 교황도 만난다. 이들은 교황이 반드시 이해해 둬야 할 가장 중요한 과학 문제들이라고 회원들 간에 동의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워크숍을 하고 보고서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