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박경리 "낙천적 해학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으며 또 그것 때문에 민족이 망하지 않았다"
6,012 17
2025.05.06 21:47
6,012 17

(전략) 조국을 잃었다는 것은, 孤兒(고아)가 된것과 다를게 없다. 내 幼年時節(유년시절) 떼지어 다니던 걸인들의 비참한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倭人(왜인)들에게 농토를 빼았기고 고향에서 쫓겨난 農民(농민)들의 行路(행로)가 걸인이었던 것이다. 부둣가에는 팔장 낀 지게꾼들이 그야말로 그리운 님 기다리듯 짐실은 배가 들어올 항구를 바라보고 서있던 풍경도 눈앞에 선하다. 다만 따뜻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그 시절, 웬만하면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人心(인심)이다. 우리 모두가 헐벗은 것 같은 기분, 굶주린 것 같은 허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 바람벽에 서 있는 것 같은 세월이었다. 그것은 바로 고아의 세계다.

옛날 서울 정릉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산동네여서 일꾼들을 불러다가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일이 있었다. 노가다로 이골이 난 그들은 목도질도 장단을 맞춰 흥얼거려가며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일이 오달지고 뒷마무리도 튼튼했다. 일하면서 주고받는 그들 대화를 듣자니까 징용 가다가 도망친 얘기였다. 장정들이 모인 경찰서 마당에서 허술한 틈을 타 튀었다는 것이다. 조선인 순사가 쫓아오는 신작로를 죽으라고 뛰는데 마침 길가에 서 있던 약국집 주인이 우연인척 순사의 다리를 걸었고 순사는 나자빠지더라는 것이다. 그 새 뛰어든 곳이 공교롭게도 막다른 골목이어서 엉겁결에 담을 뛰어넘었는데 괜찮게 사는 집의 뒷뜰이었으며 그집 식솔들이 숨겨주어 하루 밤을 지새고 보니 일본은 항복을 했더라는 것이다. '왜놈들 그때 손 안 들었으면 사람 많이 다쳤을끼라.'

약국주인과 숨었던 집의 식솔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다른 일꾼들은 징용에 갔다 왔는지 목검이 아프다, 아니 총대가 더 아프다 또 뭐, 뭐가 더 무섭다 하면서 살점이 문적문적 묻어난다 뼈가 바스라진다는둥 험악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증오와 원한이 없었다. 때론 웃고 익살스런 몸짓을 하며 일하는 것처럼 슬렁슬렁하는 말투가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돈 받고 대신 매를 맞은 흥부며 매를 맞으면서 일일이 사또한테 대거리하는 春香(춘향)을 생각했다. 절박한 상황의 春香(춘향)이야 모질고 독한 女子(여자)였지만 남정네들은 흥부나 일꾼들이나 턱없이 느슨하다. 樂天(낙천)이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낙천적 해학이 갖는 여유 때문에 끝내는 회생하여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긴 세월 존속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완)

목록 스크랩 (6)
댓글 1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힌스X 더쿠💖 음-파 한번에 완성되는 무결점 블러립🔥 힌스 누 블러 틴트 사전 체험단 모집 71 00:05 813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426,848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218,00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459,46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523,477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27,333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74,00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7 20.09.29 7,390,95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3 20.05.17 8,594,42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4 20.04.30 8,474,81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15,853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59563 이슈 나폴리맛피아 미각논란.......jpg 1 00:24 134
2959562 유머 또 차승원 조롱하는 이재율 ㅋㅋ 1 00:22 349
2959561 기사/뉴스 故안성기 영정 사진, 아내가 직접 골랐다…"젊은 시절의 풋풋함" [순간포착] 00:22 550
2959560 이슈 원위(ONEWE) '관람차 (Ferris wheel)' ◾️ CLIP TEASER ◾️ 00:21 20
2959559 정치 마차도 "내 노벨평화상 트럼프 줄래"…노벨위 "절대 불가" 1 00:21 145
2959558 이슈 에이티즈 - GOLDEN HOUR : Part.4 Deep in my heart, Deep in my soul 2월 6일 발매 2 00:20 52
2959557 이슈 14년전 오늘 발매된, 레인보우 픽시 “호이 호이” 3 00:20 38
2959556 이슈 발매 5일 전인데 매장 실수로 오프라인 진열된 엔하이픈 신보;;; 10 00:19 987
2959555 이슈 포레스텔라(forestella) <THE LEGACY> - Digital Single ‘Nella Notte’ 1 00:19 73
2959554 기사/뉴스 원주에 '삼양불닭로' 생긴다 1 00:18 345
2959553 이슈 도경수 도촬하고 다닌 오세훈의 최후 11 00:18 939
2959552 유머 핫게 OCN글 보고 궁금해서 찾아본 OCN 영화 카피글 3 00:17 558
2959551 이슈 코로나 생긴지 7년 됨 10 00:17 1,063
2959550 이슈 <장송의 프리렌 2기> 오프닝으로 들어간 Mrs. GREEN APPLE <lulu.> 오피셜 뮤직비디오 공개 8 00:15 156
2959549 유머 잘구운 군고구마 48g 10 00:14 1,234
2959548 유머 결말 반응 안 좋은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 37 00:12 3,096
2959547 이슈 16년전 오늘 발매된, 2PM “Tik Tok (Feat. 윤은혜)” 2 00:12 114
2959546 이슈 오늘자 <경도를 기다리며> 엔딩 1 00:12 1,343
2959545 이슈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발라드 1 00:11 263
2959544 이슈 4급 공무원(서기관)이었던 작가가 말하는 공무원 때려치고 나온 이유들 15 00:11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