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박경리 "낙천적 해학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으며 또 그것 때문에 민족이 망하지 않았다"
6,036 18
2025.05.06 21:47
6,036 18

(전략) 조국을 잃었다는 것은, 孤兒(고아)가 된것과 다를게 없다. 내 幼年時節(유년시절) 떼지어 다니던 걸인들의 비참한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倭人(왜인)들에게 농토를 빼았기고 고향에서 쫓겨난 農民(농민)들의 行路(행로)가 걸인이었던 것이다. 부둣가에는 팔장 낀 지게꾼들이 그야말로 그리운 님 기다리듯 짐실은 배가 들어올 항구를 바라보고 서있던 풍경도 눈앞에 선하다. 다만 따뜻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그 시절, 웬만하면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人心(인심)이다. 우리 모두가 헐벗은 것 같은 기분, 굶주린 것 같은 허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 바람벽에 서 있는 것 같은 세월이었다. 그것은 바로 고아의 세계다.

옛날 서울 정릉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산동네여서 일꾼들을 불러다가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일이 있었다. 노가다로 이골이 난 그들은 목도질도 장단을 맞춰 흥얼거려가며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일이 오달지고 뒷마무리도 튼튼했다. 일하면서 주고받는 그들 대화를 듣자니까 징용 가다가 도망친 얘기였다. 장정들이 모인 경찰서 마당에서 허술한 틈을 타 튀었다는 것이다. 조선인 순사가 쫓아오는 신작로를 죽으라고 뛰는데 마침 길가에 서 있던 약국집 주인이 우연인척 순사의 다리를 걸었고 순사는 나자빠지더라는 것이다. 그 새 뛰어든 곳이 공교롭게도 막다른 골목이어서 엉겁결에 담을 뛰어넘었는데 괜찮게 사는 집의 뒷뜰이었으며 그집 식솔들이 숨겨주어 하루 밤을 지새고 보니 일본은 항복을 했더라는 것이다. '왜놈들 그때 손 안 들었으면 사람 많이 다쳤을끼라.'

약국주인과 숨었던 집의 식솔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다른 일꾼들은 징용에 갔다 왔는지 목검이 아프다, 아니 총대가 더 아프다 또 뭐, 뭐가 더 무섭다 하면서 살점이 문적문적 묻어난다 뼈가 바스라진다는둥 험악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증오와 원한이 없었다. 때론 웃고 익살스런 몸짓을 하며 일하는 것처럼 슬렁슬렁하는 말투가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돈 받고 대신 매를 맞은 흥부며 매를 맞으면서 일일이 사또한테 대거리하는 春香(춘향)을 생각했다. 절박한 상황의 春香(춘향)이야 모질고 독한 女子(여자)였지만 남정네들은 흥부나 일꾼들이나 턱없이 느슨하다. 樂天(낙천)이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낙천적 해학이 갖는 여유 때문에 끝내는 회생하여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긴 세월 존속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완)

목록 스크랩 (7)
댓글 1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니베아X더쿠💙 니베아 선 프로텍트 앤 라이트 필 선세럼 체험단 30인 모집 67 00:05 1,581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140,648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359,68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113,82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652,143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11,737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5 21.08.23 8,565,65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0 20.09.29 7,468,95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19 20.05.17 8,680,60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0 20.04.30 8,570,94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520,631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59401 정보 액정 보호필름 완벽 붙이기 7 03:44 575
3059400 이슈 7년 전 포켓몬 카드를 중고나라에서 15만원에 팔았던 사람 19 02:41 2,965
3059399 유머 머리 자르고 일남력 MAX된 어떤 남돌...jpg 2 02:38 1,820
3059398 유머 엔믹스 해원 레드레드 반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twt 4 02:36 1,253
3059397 이슈 진수는 어버이날 선물로 뭐 준비했어? 8 02:27 2,595
3059396 기사/뉴스 어린이날 흉기로 아내 위협하고 6살 아들 밀친 50대 검거 6 02:26 822
3059395 유머 고여서 썩어버린 과정을 지나 이제 경이로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요즘 겟앰프드 유저들 수준 7 02:16 1,235
3059394 정치 코엑스급 복합시설 만든다더니...서울시장 바뀌고 사라진 공동체 4 02:16 1,215
3059393 이슈 어제 하루종일 트위터 뒤집어 놓은 아이들 토론 영상 122 02:15 10,721
3059392 정치 정청래 리스크라고 아예 못 박은 외신 16 02:10 1,508
3059391 정보 여행가서 살인 당할 뻔한 썰..(주의) 15 02:08 2,692
3059390 이슈 배우 이민정도 도전한 갸루메이크업(⚗‿⚗ ✿) 19 02:03 2,189
3059389 이슈 서른이 넘기 전에 02:00 875
3059388 이슈 존나 황당 ㅋㅋㅋㅋ 5 01:59 1,473
3059387 유머 이번앨범 퍼포디렉이랑 작사까지 참여한 이채연.jpg 2 01:58 433
3059386 이슈 5세대돌 앞에서 개큰 무리하는 효연sbn과 대선배 앞에서 웃참하는 베이비몬스터.. 5 01:55 1,057
3059385 이슈 권고사직 당한 서른 중반 현실 28 01:49 6,147
3059384 기사/뉴스 신혜선, 최근 가족 여행 "공기랑 다녀온 느낌" (유퀴즈) 6 01:48 1,720
3059383 기사/뉴스 "기저귀에 소변 봐서"…3살 아들 '돌침대'에 던져 숨지게 한 20대 친부 23 01:46 1,519
3059382 이슈 96세가 되었다는 마이클 잭슨 어머니 캐서린 잭슨 (자넷 잭슨 인스타) 3 01:46 2,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