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조국을 잃었다는 것은, 孤兒(고아)가 된것과 다를게 없다. 내 幼年時節(유년시절) 떼지어 다니던 걸인들의 비참한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倭人(왜인)들에게 농토를 빼았기고 고향에서 쫓겨난 農民(농민)들의 行路(행로)가 걸인이었던 것이다. 부둣가에는 팔장 낀 지게꾼들이 그야말로 그리운 님 기다리듯 짐실은 배가 들어올 항구를 바라보고 서있던 풍경도 눈앞에 선하다. 다만 따뜻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그 시절, 웬만하면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人心(인심)이다. 우리 모두가 헐벗은 것 같은 기분, 굶주린 것 같은 허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 바람벽에 서 있는 것 같은 세월이었다. 그것은 바로 고아의 세계다.
옛날 서울 정릉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산동네여서 일꾼들을 불러다가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일이 있었다. 노가다로 이골이 난 그들은 목도질도 장단을 맞춰 흥얼거려가며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일이 오달지고 뒷마무리도 튼튼했다. 일하면서 주고받는 그들 대화를 듣자니까 징용 가다가 도망친 얘기였다. 장정들이 모인 경찰서 마당에서 허술한 틈을 타 튀었다는 것이다. 조선인 순사가 쫓아오는 신작로를 죽으라고 뛰는데 마침 길가에 서 있던 약국집 주인이 우연인척 순사의 다리를 걸었고 순사는 나자빠지더라는 것이다. 그 새 뛰어든 곳이 공교롭게도 막다른 골목이어서 엉겁결에 담을 뛰어넘었는데 괜찮게 사는 집의 뒷뜰이었으며 그집 식솔들이 숨겨주어 하루 밤을 지새고 보니 일본은 항복을 했더라는 것이다. '왜놈들 그때 손 안 들었으면 사람 많이 다쳤을끼라.'
약국주인과 숨었던 집의 식솔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다른 일꾼들은 징용에 갔다 왔는지 목검이 아프다, 아니 총대가 더 아프다 또 뭐, 뭐가 더 무섭다 하면서 살점이 문적문적 묻어난다 뼈가 바스라진다는둥 험악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증오와 원한이 없었다. 때론 웃고 익살스런 몸짓을 하며 일하는 것처럼 슬렁슬렁하는 말투가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돈 받고 대신 매를 맞은 흥부며 매를 맞으면서 일일이 사또한테 대거리하는 春香(춘향)을 생각했다. 절박한 상황의 春香(춘향)이야 모질고 독한 女子(여자)였지만 남정네들은 흥부나 일꾼들이나 턱없이 느슨하다. 樂天(낙천)이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낙천적 해학이 갖는 여유 때문에 끝내는 회생하여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긴 세월 존속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완)
이슈 박경리 "낙천적 해학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으며 또 그것 때문에 민족이 망하지 않았다"
6,0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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