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경은 1996년 서울도시철도공사(현 서울교통공사)에 공채로 들어갔다. 당시 관리자한테 수시로 들은 말은 “여자들이 이 직장 아니면 나가서 마트 캐셔밖에 더 하겠냐?” 등이다. 이현경은 “당시 여성 노동자를 폄하하고, 편 가르는 차별적 발언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현경은 역무원이다. 여자로만 대상화되는 일은 늘 겪는다. 3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이현경과 동료 여성 노동자들은 지금도 아가씨, 아줌마라는 말로 종종 불린다. 한 동료는 “너 말고 남직원(을 불러달라)”이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반말로 고성을 지르다 남성 노동자가 나타나면 공손해지는 취객도 여럿이다.
이현경은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입사했다. 한동안 이 ‘남초 사업장’의 유일한 여성 활동가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가사노동, 양육과 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여성성이 드러나는 역할 수행을 이유로 활동을 정리하는 것은 ‘여자는 어쩔 수 없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리라 생각해 경계했다”고 말한다. 악착같이 버티고 들은 말은 “이러고 다니는 거 남편은 아냐?”다. 아이 돌볼 사람이 없을 때는 집회 때도 데리고 나갔다. “엄마 잘못 만나서 애가 고생”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남성 조합원들은 쉼 없이 지배적 성역할을 주지하려 했죠. 오기로 버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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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은 “그 싸움이 헛된 건 아니었다”며 2025년 광장의 여성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그는 ‘남태령 대첩’ 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과 농민, 여성과 장애인, 여성과 학생, 여성과 노동자를 잇는 학습의 장, 연대의 장으로 확장했어요. 내란과 탄핵 정세에서 여성이 주도력을 발휘하고 새로운 투쟁의 장면을, 문화를 만들고 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30 여성 존재 자체를 외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지난 11일 비전발표회 뒤 ‘광장을 주도했던 2030 여성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기자 질문에 “빛의 혁명 과정에는 모든 국민이 함께했다. 국민들이라는 거대 공동체의 모두의 성과”라고 답했다.
이현경은 “동문서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 모두의 참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데, 여성과 국민이 다른 주체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이현경은 이 발언이 대선 정국에서 의도적인 여성 지우기라고 본다. “여성 의제 설정과 추진에 소극적이고, 나중으로 미뤄왔던 이재명과 민주당의 일관성 있는 태도의 연장”이라며 “여성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노동할 권리,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을 권리 등 광장에서 여성들이 요구하고 외쳤던 내용들을 어떻게 수렴하고 보장하려 하는지 이재명과 민주당에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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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종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