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었던 꽃도 언젠가는 시든다. 그러나 시들어도 꽃은 꽃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는 것도 마찬가지. '파과'는 액션 누아르의 껍질 속에 나이 듦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는 과육을 맛있게 담아냈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배급 NEW/제작 수필름)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인들을 은밀하게 처리해 온 조직인 '신성방역'에서 40년 이상 활동한 전설의 킬러 조각(이혜영)과 모종의 이유로 그의 목숨을 집요하게 노리는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 두 인물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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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단연 주인공 조각을 연기한 배우 이혜영이다. 올해로 63세의 나이에도 영화 속 강도 높은 액션을 멋지게 소화해 낸 그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기량으로 어둠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조각 그 자체가 됐다. 전성기 시절에 미치지 못하는 신체 능력의 한계 앞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벌레 같은 인간들로부터 선량한 이들을 지키는 '방역'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조각의 프로페셔널함은 이혜영의 감정이입을 통해 개연성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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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러 장면을 통해 강조되는 '나이 듦'에 대한 고찰은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준다. 특히 나이 들고 병들어 버려진 강아지를 내려다볼 때와 과일 가게 주인에게 흠이 생겨 팔리지 않는 과일을 넘겨 받을 때 조각의 시선에 담겨있는 쓸쓸함에서는 점점 더 피부로 와 닿게 될 고령화 사회의 일면이 보이기도 한다. 업무 현장의 은퇴 시기를 앞뒀거나 혹은 현역에서 물러난 우리 부모님들이 연상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웰메이드'라는 수식을 자신 있게 붙일 수 있는 한국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다. 연기, 서사, 편집, 비주얼, 음악 그리고 메시지까지 육각형 밸런스가 잘 갖춰진 '파과'의 묵직한 과즙을 다들 꼭 한 번 쯤 맛보길 권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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