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파리는 19세기 중반쯤에 한번 도시가 잿더미가 된 김에 이참에
중세때부터 내려오던 낡은 도시구조를
당시 기준 완전히 최신식으로 재정비한 상태임
그래서 당시 라이벌이었던 영국 런던에 비해 구획정리도 훨씬 이쁘게 잘되어있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넓직한 도로들이 방사형으로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현대식 도시구조였음
탑의 철골구조를 그대로 다 노출시키며 드러내어
19세기 기준으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 그 자체였던
(그 시대 기준) 미래형 랜드마크였던 에펠탑까지
파리는 당시 가장 힙하고 트렌디한 도시로 전세계인들의 동경을 자아냈음









베를린
중세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그다지 큰 도시라고 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18세기에 프로이센 왕국이 수립되며 수도로서 발전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더니
19세기 독일제국의 통일 이후로는
베를린 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학교, 박물관, 극장과 같은 문화시설들이
베를린 시민사회의 지적, 문화적 열망과 수요에 따라 가득 채워진
유럽의 대표 지성도시로 이름이 높았다.
베를린에 입주한 각종 연구기관의 역량은
고고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 물리학, 경제학, 전자공학 등
모든 분야에서 유럽과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도시였다.






빈 (비엔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의 1890년대의 모습들.
인구 백만이 넘는 대도시
유럽 최고의 제국인 합스부르크의 심장으로서 발전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마치 변화하는 시대를 거부하듯 건물의 외양만큼은 네오 고딕, 네오 르네상스란 이름으로
새로운 시청사, 극장, 교회들을 짓던 다소 고풍적이되 절충적인 취향이
고귀한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합의하에 용인되던 기묘한 도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9세기 말,
1890년대에서 1906년까지 즈음의 모습.
유럽에서 가장 발전이 뒤쳐져 있는 후진국 러시아의 서유럽화를 부르짖던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의 가열찬 노력 끝에 늪지대에 조성된 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궁전과 성당들을 통해 화려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1917년의 공산주의 혁명의 여파로 러시아의 수도가 모스크바로 천도하게 되면서
비록 그 문화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절대적인 정치적 영향력은 다시 되찾지 못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