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는 조선 후기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중상학파 실학자 중 한명임
청나라를 오고가며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하는 박제가 입장에서,
거의 울분에 찬 어조로 조선팔도의 풍습들을 인정사정없이 비판하는 걸 보면 뭔가 오묘한 기분이 됨.
그의 대표적 저서인 <북학의>를 보면 정말 당대에 살던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독하고 날 선 비판이라는 느낌.



"우리나라가 검소하고 절약하는거라고?
그냥 못살고 가난하고 물자가 없는 거다."
"애초에 물건을 똑바로 만들질 않고, 표준적인 계량법도 없어서 관리를 안 하니,
전국의 유용한 물산들이 죄다 뭔가를 고치고, 깁고, 다시 세우는데 소모된다.
이런 바보짓이 어디 있느냐?"
"청나라는 좁쌀이나 조처럼 작은 씨를 심을 때도 따로 고르게 뿌리는 도구가 있다. 내가 여기 그림까지 그려놨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데 한 줌씩 쥐고 주먹구구로 뿌려대니 싹끼리 경쟁을 시켜서 효율이 떨어진다."
"수레를 쓰기에는 우리나라가 산이 많아서 지형이 험준하다고?
청나라에서는 잔도밖에 안 난 곳에서도 그 실정에 맞게 제작한 수레가 다닌다. 변명일 뿐이다."
"배가 접안하는 곳에는 마땅히 가교를 세워서 사람도 물건도, 그리고 말도 편하게 배랑 육지를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안 되니 멀쩡한 말을 강제로 부려서 갑판을 펄쩍 뛰어넘게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말도 생긴다.
와중에 이런 실정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이 말은 배를 잘 타는 말, 이 말을 배를 못 타는 말' 이따위 구분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관직이 있는 누군가가 일본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한테 이런 질문을 받았다더라.
'조선사람들은 정말 녹봉을 이만큼밖에 안 받소?'
그러면서 내민 종이를 보니 그런데 그게 임진왜란 이전의 법전으로, 요새 받는 양의 두 배도 넘었다.
일본인들 보기 부끄러워서 대충 얼버무렸다고 하더라."
"우리나라는 명나라를 그리워하고 청나라를 미워한다지만 지금 청나라가 중국이 된 지 백 년이 넘었는데,
하물며 한 사람이 누군가를 원수로 여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예리한 칼을 차고 있으면 그걸 빼앗든가, 내 칼을 그만큼 날카롭게 벼리거나 해야 할 것 아니냐?
원수(청나라)가 허리춤에 찬 칼을 못 본 척하고 그가 한심하다고 욕이나 하고 있으니.."
"청나라 소들은 밭일하는 애들도 정기적으로 씻기고 털을 빗겨주어 윤기가 좔좔 흐르더라. 조선 소하고는 딴판이다."
"성곽이란 모름지기 돌을 짜맞추는 게 아니라 벽돌을 써서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지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성곽다운 성곽조차 하나도 없다."
"청나라에서는 벼슬아치가 타고다니는 가마도 뒤에 수레를 끌고 다니더라. 내가 보니 그 안에는 수행하는 인부들이 편히 앉아 있었다.
조선은 어떤가? 말을 타고 가면서도 그 수행원들은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마 뒤를 도보로 쫓아가야 한다.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도 이런 꼴을 하고 있는게 참 나라망신이다."
"지금 백 년 넘게 태평성대가 계속되고 있으며 나라가 어딘가로 확장한 일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찌하여 물산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나라는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누군가가 일본에 가서 중국산 먹을 찾으니 거기 사람들이 한달음에 달려가서 한 짐어치를 순식간에 구해오더라.
우리나라는 한때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며 돈을 벌다가
일본과 청나라끼리만 직접 교역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당대에는 훨씬 더 아니꼽게 느껴질 수 있는 주장들인 것 같은데..
저런말들을 거침없이 하고 다녔다는게 참 용감한 사람이었구나 싶음
참고로 박제가는 이런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