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어드밴스드·LG화학 등 전기 직접구매 추진
한전 산업용 전기 판매 가격, 시장가격 크게 웃돌아
대기업 빠져나가면 中企·가정용 요금 인상 불가피
석유화학업계 일부 대기업이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사다 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이 지난 3년 새 산업용 전기요금을 70%나 올려 한전 소매가가 도매시장 가격을 훌쩍 뛰어넘자 ‘전기 직접 구매’(직구)에 나선 것이다. 대기업의 ‘탈(脫)한전’이 확산하면 수십 년간 이어진 한전의 독점 판매 구조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한전의 재무 상황이 더 나빠져 직구가 불가능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가정의 전기료 부담이 급증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23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SK어드밴스드와 LG화학은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직접구매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제반 절차를 밟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회원사 등록을 마쳤고, 변압기, 배전망 등 자체 망 설비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솔루션은 직접 구매의 유불리를 따져보며 거래소 회원 가입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석유화학 대기업이 전기 직구에 나선 것은 한전의 산업용 전기 판매가가 킬로와트시(㎾h)당 약 182원으로 시장 가격을 크게 웃돌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간(4월 16~22일)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된 전기 도매가격(SMP·계통한계가격)은 ㎾h당 평균 124.7원이었다. 석유화학업계는 전기료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다. 업황 악화에 시달리는 석유화학업계로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전기 직구에 나설 유인이 크다.
직구제는 3만㎸A 이상의 수전 설비를 갖춘 대용량 전력 사용자가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사다 쓸 수 있게 한 제도다. 2001년 전력시장 구조 개편 당시 도입했지만, 그동안 한전의 소매가격이 저렴해 이용하는 기업이 없었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는 “큰손 고객이 빠져나가면 부채 203조원, 누적 적자 43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재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며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억눌러 온 정부의 가격 통제가 산업용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과 탈한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통제 '부메랑'…산업용 전기료 3년간 70% 오르자 대기업 이탈
기업들 잇단 전기 '직구'…한전 독점판매 구조 흔들
전력업계에선 한국전력 판매가가 도매시장 가격보다 높은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석유화학·철강사 등을 중심으로 ‘전력시장 직접구매제’에 참여하는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직접구매제를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전력 사용 기업은 500여 곳이다. 전체 전력 소비자의 0.002%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쓰는 전기량은 전체의 29%에 달한다. 이들 대기업이 한전과 거래를 끊으면 한전 재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전력업계 전문가는 “대기업들이 이탈한 뒤에는 나머지 기업과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을 더 올려 받는 ‘교차 보조’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기료 방패막이 담당한 한전
23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연료 가격이 급등한 2022~2023년 전력 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 평균은 킬로와트시(㎾h)당 181.9원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 상승과 서민 부담 등을 이유로 전기료 인상을 억제해 한전의 산업용 평균 전기요금은 ㎾h당 136.2원에 불과했다. 그 차액(45.7원)은 오롯이 한전이 부담했다. 2년간 한전 산업용 전기 판매량이 587테라와트시(TWh)인 점을 고려하면 한전이 본 손실은 27조원에 달한다.
견디다 못한 한전은 2023년부터 산업용 전기료를 대폭 인상했다. ‘국민 수용성’을 이유로 주택용 전기요금은 놔둔 채 산업용만 지난 2년간 네 차례에 걸쳐 총 38%가량 높였다. 치솟은 전기료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SK어드밴스드가 지난해 말 전력거래소에 처음으로 직접구매 의사를 타진한 배경이다.
전력거래소는 20여 년간 잠자고 있던 직접구매제도를 되살리기 위해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가 이를 의결해 기업이 제도를 활용할 길이 열렸다. 대신 정부는 기업들이 한전 소매가격과 도매가격을 비교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허들’을 마련했다. 직구제 계약유지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고, 계약기간 내 한전 소매 고객으로 복귀하면 9년간 다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가정용과 형평성 논란 불가피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전기 가격과 구매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직접구매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가격을 억눌렀던 정부가 한전의 재정난을 해소할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대기업의 ‘탈(脫)한전’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작년 말 산업용 전기료만 인상하면서 “러시아 사태 당시 에너지 가격 급등을 한전이 떠안았는데, 그때 대기업이 빚진 것을 환원한다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대기업의 한전 이탈을 허용해준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과 같이 직구제가 운영되면 한전을 빠져나갈 수 있는 대기업과 선택권이 없는 중소기업 및 가정용 소비자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남은 소비자들이 더 가파른 전기요금 인상을 감당해야 해서다. 이 경우 국민의 전기료 인상 수용성이 떨어져 첨단산업을 위한 전력설비 투자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전력업계는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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