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적을 의심 받는 이유
- 강호석 기자
- 승인 2022.04.21 06:32
<IMF와 한덕수>
IMF와 협상 당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최공필(‘국가부도의날’ 김혜수 역)이 양해각서의 부당성에 항의했지만, 한덕수 당시 통산부 차관은 오히려 IMF의 편을 들어 양해각서를 그대로 수용해버렸다.
<한중 마늘파동’과 한덕수>
마늘 파동이 있었던 2000년 당시는 중국의 대외 무역이 급증해 미국을 뒤쫓던 시기이다.
더구나 중국의 세계 시장 진출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일방적인 세이프가드 권리를 갖게된 직후였다.
이 때문에 한덕수 본부장이 미국의 첨병이 되어 중국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함으로써 증가하던 한국의 대중국 무역에 제동을 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한덕수 후보자의 이런 행태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통상교섭본부장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2001년 다시 대통령수석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한덕수 후보자는 이듬해 12월 대선을 치른 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와 한덕수>
이때 론스타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앤장’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여 외환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조작했다. 그 덕분에 론스타의 ‘헐값 매각’이 가능했다.
이처럼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에 관여한 김앤장, 그리고 김앤장의 고문이었던 한덕수 후보자.
<광우병 쇠고기와 한덕수>
2007년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이면서 국무총리였던 그는 ‘광우병 쇠고기’ 논란으로 협상이 지연되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차기(이명박) 정부에 부담 주지 말고 한미FTA를 임기 내에 체결하자”라고 강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 간 통상교섭 과정에 생긴 그의 일화는 또 있다. 그는 통상교섭본부장 시절인 1998년 한‧미 투자협정 협상 과정에서 수입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장 개방 노력을 알리겠다며 관용차를 외제 차량으로 바꿨다. 장관급 관료가 수입차를 관용차로 선택한 건 그때가 처음이다.
<저축은행 사태와 한덕수>
저축은행 사태는 저축은행의 기업대출한도를 무제한으로 풀어 주는 것을 허용한 ‘저축은행법 시행령’ 때문에 발생했다.
바로 이 ‘저축은행법 시행령’을 2006년 재정경제부 장관이던 한덕수 후보자가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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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사인데 과거 이력이 화려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