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불평등의 문제는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하는 것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1965년 하워드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쇠사슬에 발목이 묶여 있던 사람을 풀어주고 경주의 시작점에 세운 다음 ‘이제 자유니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라’라고 해서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3,102 3
2025.04.22 16:25
3,102 3

[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여성할당제와 능력주의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1981년 여성으로는 미국 최초로 연방대법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1952년 스탠퍼드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펌들이 변호사로는 채용하지 않고 법률비서직만을 제의하자, 공직을 찾아 산마테오 카운티의 검사보로 일해야 했다. 보수도 없고 자기 사무실도 따로 없는 조건이었다. 두 번째로 여성 연방대법관이 된 루스 긴즈버그는 1960년 컬럼비아 로스쿨 공동수석 졸업 후 연방대법관의 연구원직을 지원했지만 직을 맡지 못했다. 여성이라는 이유였다. 독일의 베를린필하모니가 여성 단원을 채용한 것은 창단된 지 100년이 된 1982년에 들어서였다. 지휘자 카라얀이 결단을 내려 그리 되었지만, 이 때문에 그는 단원들과 불화하게 되었고 30여년간의 평화로운 공존관계가 깨지는 일을 겪어야 했다.

 

내가 소속 법무법인에서 대표 노릇을 할 때, 사내의 외국인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 중엔 파트너 변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낮은 로펌에 사건을 주지 않는 곳이 있다. 한국도 변할 것이다. 여성 변호사의 파트너 승진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란다.”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우리 사회에 여성의 취업과 승진에서 구조적 차별이 엄존하는 것은 통계가 잘 말해준다. 여성은 과연 남성에 비해 능력이 떨어질까.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소속 법무법인에서 공개경쟁 채용시험을 시행해 보니, 여성 변호사가 남성 변호사보다 더 많이 합격하는 일이 잦았다.

 

불평등의 문제는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하는 것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1965년 하워드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쇠사슬에 발목이 묶여 있던 사람을 풀어주고 경주의 시작점에 세운 다음 ‘이제 자유니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라’라고 해서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회의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문을 걸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권리와 이론으로서의 평등이 아니라 사실과 결과로서의 평등이다.” 이런 인식에 기초해서, 단순한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이 바로 ‘적극적 조치’다. 그리고 차별의 태양을 실질적으로 파악하여 결과적 공정을 찾는 방책으로 등장한 것이 목표율 설정이나 할당제다. 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어떤 집단에서 소수자가 효과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려면 전체 구성원 중 적어도 15% 이상을 점해야 한다.(김현숙, ‘양성평등과 적극적 조치’) 물론 적극적 조치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반대 주장이 거셌다. 역차별, 수혜자의 성취 부진, 수혜자에 대한 낙인효과나 열등하다는 편견의 조장 등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고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것 따위가 그 근거였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효과를 감내하더라도 평등의 실현은 시급한 과제다. 또 능력주의는 자원이 많은 기득권 계층을 유리하게 하여 자칫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폐해를 낳는다.(박권일, <한국의 능력주의>)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우선 국가의 강력하고도 적극적인 개입이고, 다음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다. 1965년 존슨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300명의 기업경영자들은 여성의 고용을 위해서 ‘목표와 시간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양식을 보였다. 이게 선진국이다.

 

우리나라도 법령에 의해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 비례대표 후보 50% 여성 할당제 등 여러 제도가 채택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제도에 따라 그 수혜자가 남성일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고무적인 일은 법 개정으로 오는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임원 중 1명 이상의 여성을 두어야 하고, 또 2030년까지 국공립대에서 여성 교수의 구성비가 25% 이상이어야 하도록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공직이나 전문직 등의 경우이고, 그렇지 않은 직종이나 일반 기업에서는 사정이 좋지 않다. 입법으로든 행정으로든 기득권을 깨고 의식을 전환할 만한 계기를 부단히 만들어 가야 할 이유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여,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고 여성가족부의 폐지 공약을 내걸었던 대선 후보자가 곧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가 소속한 당의 대표는 최고위원 시절에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능력주의보다 나은 시스템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에 따른 정치적 이익이 상당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지 15년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딱한 현실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새 집권자들의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이래저래 조마조마하다.

 

 

여성할당제 부정하고 여가부 폐지 및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칼럼.

https://www.khan.co.kr/article/202204250300045

목록 스크랩 (1)
댓글 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선정 시 최대 100만원] 커뮤니티 하는 누구나, 네이버 라운지의 메이트가 되어보세요! 193 12.26 10,636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368,76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084,487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408,70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402,302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07.22 1,014,25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1 21.08.23 8,455,09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6 20.09.29 7,383,73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1 20.05.17 8,580,57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2 20.04.30 8,470,07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294,793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44878 이슈 8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1987” 1 01:21 104
2944877 이슈 블라인드 뒤집어졌었던 프로포즈 후기 9 01:19 1,408
2944876 유머 고민상담의 가장 좋은 친구 1 01:15 467
2944875 이슈 의외의 피쳐링 라인업이 나와서 해외 팬들 놀란 몬스타엑스 주헌 솔로 앨범 2 01:13 441
2944874 유머 장기용 육아에 지친 애아빠미 ㄹㅈㄷ 2 01:12 1,001
2944873 유머 손종원 요리는 보면 바로 안다는 최현석 16 01:09 2,420
2944872 유머 ㄹㅈㄷ 트민남이라는 아이돌 6 01:08 1,238
2944871 이슈 올데프 애니가 올해 추천한 아이돌 노래들 5 01:08 786
2944870 이슈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단 한점의 국보를 위해 마련된 공간, 백제대향로관 20 01:02 1,500
2944869 유머 조현아에게 키링을 받은 원희의 반응 10 00:59 1,225
2944868 팁/유용/추천 여자들아 세상에 나만 혼자인거같고 다 끝난거같고 남들은 잘되는데 나만 안되는거같고 9 00:58 2,182
2944867 이슈 그나마 직장다녀서 사람꼴 하고 사는구나 싶은 사람들 37 00:58 3,479
2944866 기사/뉴스 택시 문 닫아주고 3만원…자율주행차가 만든 신종 ‘꿀알바’ 5 00:57 1,294
2944865 이슈 7년전 오늘 발매된, NCT DREAM “사랑한단 뜻이야” 4 00:54 128
2944864 이슈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이 나폴리 맛피자가 된 이유 15 00:53 3,079
2944863 유머 사주를 기반으로 나를 해리포터 세계관으로 해석해줘.GPT 16 00:52 1,332
2944862 이슈 올해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좋은 평가 받은 여솔 노래.jpg 4 00:52 1,169
2944861 이슈 ai로 만든 양치기 소년 재해석 노래 5 00:51 352
2944860 이슈 아니 진짜 현빈손예진 아들 얼마나 잘생겻길래 모두가 입을 모아서 태어나서 본 아기 중에 제일 예쁘다 만화를 찢고 나왔다 이런 칭찬이 끝도 없이 나오는거야.. 15 00:49 2,713
2944859 팁/유용/추천 손뜨개로 만든 토끼 아이팟 케이스 8 00:47 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