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홈경기를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정후는 전날 아버지 이종범 KT 위즈 코치와 통화했던 내용을 소개했다.
이정후는 4월 5일 홈 개막전에서 6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과 2삼진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9회 끝내기 기회를 땅볼 아웃으로 물러났던 터라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인 6일 이정후는 2루타 2개 포함 3안타를 기록하면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정후는 이날 “경기 전에 코치들이 미리 준비한 타격 영상을 보고 자신이 좋았을 때의 타격폼과 5일 시애틀전에서의 타격폼을 비교했는데 밸런스가 많이 무너진 걸 느꼈다”면서 “코치들이 ‘걱정할 건 아니고 이것만 신경 쓰면 좋은 타구가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것만 생각하고 타격하니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후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경기 후 아버지와 통화했는데 ‘그냥 재미있게 하라고, 계단을 오를 때 한 계단씩 올라가려고 해야지 한 번에 열 계단씩 올라가면 안 된다’라고 말씀해주셨다. 평소 야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아버지가 정신적인 면에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말들을 많이 해주신다.”
4월 15일, 이종범 코치와 전화 연결이 이뤄졌다. 최근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아들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이 코치는 “지난해 수술 후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10월 1일 한국 들어와서 딱 3일 쉰 다음 10월 4일부터 재활 훈련에 집중했던 노력들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정후가 기나긴 재활과 큰 시련을 맛봤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겠나. 유혹도 많았을 텐데 그걸 다 물리치고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걸 보면서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이종범 코치는 최근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해 부상당하기 전 정후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상대 투수 볼의 엄청난 회전을 자신의 스윙 스피드로 때렸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회전수가 많은 공을 강하게 때리면 타자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들어오는 볼을 부드럽게 방망이 헤드로 툭툭 치면 그게 엄청난 발사 각도를 만들어 날아가는데 힘으로만 대응하려니까 땅볼이 많이 나오는 거라고 말이다. 정후가 올 시즌을 앞두고 헤드 무게와 하체의 힙 턴으로 치는 방법을 훈련했고, 워낙 밸런스가 좋은 선수라 기대했는데 내가 말한 걸 타석에서 느꼈다고 하더라. 방망이가 둥글고, 볼도 둥근데 그걸 어퍼 스윙을 해서 퍼 올리는 건 어려움이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타격 메커니즘으로 스윙해야 하는데 올해 정후가 이런 점들이 많이 좋아졌다.”
이종범 코치는 지난 4월 5일 시애틀과의 홈 개막전 이후 이정후와 통화했던 내용도 자세히 들려줬다.
“(신시내티, 휴스턴) 원정 경기에서 돌아와 홈 개막전을 치렀는데 그날 정후가 6타수 1안타였고, 9회 끝내기 상황에서 허무하게 물러나는 바람에 연장전을 치렀다. 경기는 이겼지만 정후는 마음이 많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해줬다. 너는 날씨가 따뜻하면 충분히 더 잘 칠 수 있고, 오늘 잠시 못했을 뿐이라고.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야지 어떻게 두세 개씩 한꺼번에 올라갈 수 있겠느냐고. 힘들게 재활하며 시련도 겪을 만큼 겪었으니 이제는 올라갈 일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이 코치는 이정후가 5월 말부터는 더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이정후가 지난해 5월 13일 경기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한 터라 1년 정도 지난 올 5월 말 정도면 고비를 넘어설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정후는 5월이 아닌 시즌 개막부터 펄펄 날고 있고 4월 18일 현재 타율 0.348 출루율(0.403)과 장타율(0.652)을 더한 OPS가 1.055다.
이 코치는 “정후가 95마일(152.8km/h)의 공을 받아 놓고 때린다는 건 조금씩 (메이저리그에) 익숙해졌다는 의미”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정후는 올 시즌 3번타자 중견수로 활약 중이다. 지난해 1번 리드오프로 뛰다 3번으로 고정됐다. 이종범 코치는 3번이 이정후에게 딱 맞는 타순이라고 봤다.
“내가 선수일 때는 1번이 나한테 맞았다. 공격적인 성향에 도루를 많이 하니 1번이 좋았다. 그런데 정후는 3번이나 5번 타순이 맞다. 정후의 공격지표를 보면 주자가 있을 때 집중력이 더 좋다. (이정후는 득점권에서 17타수 7안타로 타율 0.412 2홈런 12타점 OPS 1.245를 기록 중이고, 득점권 타율, OPS 모두 팀 내 1위)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이면 정후한테 엄청난 파괴력이 생길 거라고 본다.”
이 코치는 아들 이정후가 올 시즌 좋은 기록을 올리는 것보다 부상 없이 건강한 몸으로 시즌을 완주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욕심을 내면 무리한 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그런 욕심을 내려놓고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정후한테 이야기 들어보니 팀의 코치들이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타격과 수비, 주루 코치들이 정후에게 힘이 되고 있고, 정후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좋은 선수는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팀 문화와 분위기, 그리고 코치들의 역할이 크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정후가 반등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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