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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애프터썬>은 이미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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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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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9284898

ㅊㅊ 여성시대 비밀의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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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썬, 2023

본문 GIF파일들의 출처는 https://wonmx.tistory.com/150

 

내내 함께 있었음에도 내가 끝내 가닿을 수 없던 한여름, 한낮의 어떤 그늘

 

이제는 나보다 어린 모습으로 영영 멈춰있을 나의 아빠에게, 안녕

 

 

<애프터썬>을 보고 나오자마자 머릿속에 온갖 단어가 두서없이 떠오르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문장의 꼴로 대강 정리했을 땐, 이런 거였다. '간절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발화한 상상까지 동원해도 끝내 바닥까지는 가닿을 수 없는, 나의 가장 친밀하고도 어두운 심해의 영역인 당신에 대하여.'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미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납득 가능하거나 달리 보이는 것들. 낡은 사진첩 속 사진 한 장 같은 것들. 마냥 신났던 것으로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어느 날,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달리 곁에서 손을 잡고 선 내 부모의 표정은 왜 그렇게 슬펐던 걸까.

 

샬롯 웰스 감독은 자신의 장편 연출 데뷔작에서 유년 시절의 한 물결 조각으로부터 시작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보이는 솜씨를 발휘한다. 그는 어린 시절 아빠와 보냈던 여름휴가를 기억하며 쓴 각본이 평범한 소설 같은 구성에서 시작해 점점 더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형태로 바뀌어갔음을 고백한다. 20년 전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보낸 여름휴가. 거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과거의 명백한 진실'일 수는 없다. 기억은 주관적이며, 다르게 적힌다. 나아가 영화는 관객이 목격하는 것들 중 어디까지가 기억의 영역인지, 그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으로까지 확대된다.

 

<애프터썬>은 빛바랜 캠코더 영상으로 문을 연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조악한 화질의 영상이 과거의 시간임을 짐작케 한다. 열한 살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함께 튀르키예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유적지를 관광하고 호텔에서 수영하며 식사를 하는 정도가 전부지만, 부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한 상태다. 부모가 이혼한 사연이 곧 드러나지만, 소피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오빠나 여동생으로 착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캘럼은 이제 갓 서른 살을 넘긴 사람이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향인 포틀랜드를 떠나 런던에 자리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람들이 '어린애'라고 부르는 것이 이제 막 기분 나빠지기 시작한 소피에게 캘럼은 죽이 잘 맞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러나 순간순간, 소피는 아빠의 얼굴에 스치는 우울함의 그늘도 본다.

 

평화로운 휴가지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했던 영화가 조금씩 낯설게 보이는 것은, 부녀간의 따스한 정서적 온도와 부딪히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이따금씩 영화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을 비춘다. 이야기 가운데 불쑥 침입하는 방식이다. 그가 성인이 된 소피라는 것을 짐작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 조명이 만드는 섬광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소피 주변에서 정신없이 춤추는 사람들 사이엔 캘럼도 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휴가를 함께 보냈던 때로부터 조금도 나이 들지 않은 모습이다. 그에게 다가가지도, 선뜻 손을 내밀지도 못하던 소피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다른 동작을 취한다. 후반부에는 잠에서 깬 현재의 소피가 캠코더 영상을 보는 모습도 나온다.

 

모두에게 직관적으로 쉽게 가닿는 방식은 아니다. 이건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이 장면들로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보는 순간에는 미처 다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애프터썬>의 모든 장면에는 일종의 라벨링, 즉 분류가 필요하다. 영화를 구성하는 것은 20년 전 소피와 캘럼이 함께 찍은 캠코더 영상(기록),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기억), 어둠 속 소피와 캘럼(상상), 잠에서 깬 소피의 모습(현재)으로 나뉜다.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선형적 흐름을 보여주거나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의 플래시백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이 모두를 마치 띠처럼 이어 펼쳐 보이는 쪽을 선택한다.

 

캠코더 영상이 바꾸거나 편집될 수 없는 기록이라면, 아빠와 소피가 함께할 때를 담은 영화의 시선은 소피 관점의 기억이다. 동시에 어떤 장면들은 소피의 상상이 채운 영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관객에게만 제시되는 영화적 상상이다. 밤의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등 소피가 보지 못했던 캘럼의 모습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열한 살의 소피는 아빠가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 온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요체는 여름휴가 이후 어떤 이유로 홀로 남겨져야 했던 딸이 손에 쥔 모든 기록과 기억, 그리고 상상까지 동원해 그때의 아빠를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아빠가 열한 살이라면 지금 뭐 할 것 같아?"라고 묻던 어린 시절의 소피에게 캘럼은 우스꽝스러운 춤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지금의 나이가 되기까지 더 많았을 궁금증 앞에서 아빠는 대답해 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빠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을 껴안은 채로 그 시절 그의 나이가 된 딸은 평생 기억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는 애잔한 패잔병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평생 열 수도 없고 열리지도 않을 단단한 과거의 문 앞에 어린아이의 모습인 채로 남아버린. 성인이 된 소피의 얼굴이 어딘가 텅 비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테다. 딸은 가장 친밀하고도 어두운 심해의 영역인 아빠에 대해 끝내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다. 단호한 인상마저 남기는 마지막 장면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그 사실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때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 딸은 자신 앞에서 울며 무너지는 모습을 최선을 다해 감췄을 아빠에게 손을 내밀어 꽉 안을 수는 있다. 이는 자신의 시간을 회복하려는 딸의 몸부림이자,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진심의 위로다. 결국 <애프터썬>은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순간에 사랑이 있었다고 말하는 영화다.

 

"우리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순 없을까? 사랑에게 그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퀸과 데이비드 보위가 함께 부른 '언더 프레셔(Undr Pressure)의 가사가 가열한 섬광의 이미지와 함께 흐르는 순간,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극장을 나선 이후 점점 더 짙어지는 감흥은 덮쳐오는 파도와 같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직접 경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감각 중에서도 촉각이 가장 예민하게 전달되는 영화였다는 점도 계속해서 곱씹어보고 있다. <애프터썬>은 이미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이다. 앞선 대비보다는 일어난 일의 대처 방안에 필요한 물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제목이다. 기억의 영역에서는 저마다 마땅한 대응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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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의 영화관 - 이은선 (클로브)

 

책에 다른 영화 칼럼도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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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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