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157.html
- 30억 상속 30대도 “상속계급사회”… 계급통 앓는 청년들
※기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개인정보가 드러나 있어 부득이하게 모두 가명을 씁니다.
32살 김현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에게 ‘빚’부터 물려받았다. 경제력이 없는 부모는 대학생이 된 김현제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월세와 생활비로 썼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졸업 때 김현제의 자산은 ‘마이너스 2천만원’이었다.
유명 대학 입학, 졸업 때 ‘마이너스 2천만원’
부모의 그늘부터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몸 누일 방 한 칸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꼬박 6년 동안 친구 집을 전전하며 일했지만, 2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자산이 모이지 않았다. 독립하고 나서도 가족 생계비를 몇 번 보냈는데, 그러다보면 곧 계좌가 비었다. 아르바이트와 중소기업 직장생활을 하며 서울 영등포구에 허름한 1.5룸 집 보증금 8천만원을 마련하는 데 13년이나 걸렸다. 월세 20만원씩 내는 ‘반전세’ 집인데, 그나마 보증금의 80%(6400만원)는 중소기업청 대출로 조달했다. 최근 서른 살 남동생과 1.5룸에서 함께 살게 된 김현제는 “평생을 원룸에서 가족들과 살아서 그런지 제 소원은 ‘혼자 쓰는 방’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제는 주변에 부모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한 친구들을 보면 씁쓸함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은 반전세 보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하고 대학원 진학도 포기해야 했는데, 부모에게 집값과 생활비를 지원받은 친구들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거나 전문직 자격증을 따기 위해 손쉽게 퇴사를 선택했다. “결국 스펙도, 그 스펙을 쌓을 시간도 부모의 자산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부모님께 상속받게 될 거고, 그래서 자산이 생길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걸 들으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계급통 느낀다’고 표현해요.” 김현제가 말했다.
25살 취업준비생 조진수도 김현제와 똑같이 “계급통을 느낀다”는 표현을 썼다. 조진수는 경기도의 작은 변두리 도시에서 겨우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원 강사와 호텔 직원으로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다. 최근 다행히 청년공공임대주택 거주자로 선정돼 보증금 60만원 월세 33만원 집에 살게 됐다는 조진수는 자신과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자신은 여전히 서울이 아니라 변두리에 사는 것처럼 느낀다고 털어놨다. “목동이나 대치동 이런 부촌에서 자란 친구들은 부모의 자산을 증여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월세 33만원짜리 집에 사는 제겐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원을 넘었다거나 수십억원 자산 규모를 스펙으로 내세우는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보면 역시 계급통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