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17대 왕 효종시절에 청나라는 조선에 신붓감을 요구함

신분은 왕의 딸이나 누이, 왕족의 딸, 대신의 딸 중에 보내라고 함

효종의 공주들은 이미 혼인한 숙안공주를 제외하면 다 나이들이 너무 어렸음
왕족이나 대신들에게 청나라에 딸을 보낼 사람을 구해봤지만
당연히 그 누구도 오랑캐들에게 자신의 딸을 주고싶어하지 않았음

그때 금림군 이개윤이 자신의 딸을 내놓는데
청나라 사신도 이개윤의 딸을 살펴보더니 바로 뽑아서 데려감
효종은 이개윤의 16세 딸을 공주로 봉하고
의순공주(옳을 의, 순응할 순: 나라의 뜻을 위해 순순히 따르다)라는 작호를 내림

외교적인 후폭풍때문에 의순공주는 자결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수조차 없는 처지였음
한달 뒤 의순공주는 청나라의 권력자 도르곤의 첩이 되기 위해 조선을 떠나고
이를 본 백성들이 모두 비참해함

당시 조선에서 북경까지는 2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함
하지만 의순공주는 험난한 길보다 더 힘든것이 있었는데 청나라측의 통역관 정명수(=매국노)였음
천민 출신으로 청나라에 귀화한 후 벼락출세한 정명수는
본인의 과거를 보상받기라도 하려는듯 같은 조선인들에게 온갖 행패와 패악질로 악명이 높았음

"내가 청나라에 도착해서 섭정왕(도르곤)께 여쭈면 네 목숨이 끊어질것이니
네가 감히 마음속으로나마 우리나라에서 그런 악행을 계속 할테냐?"
북경으로 가는 길마다 조선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정명수를
의순공주는 그냥 두고보지않고 매섭게 정명수를 꾸짖음
16세의 어린 공주이지만 청나라의 섭정왕 도르곤의 첩이 될 몸이다보니
정명수는 꼼짝도 못하고 싹싹 빌었다고..

의순공주가 온다는 소식에 당시 청나라의 섭정왕 도르곤은 직접 마중을 나감
당시 도르곤은 어린 황제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며 사실상 청나라의 최고권력자였음
도르곤의 나이 39세... 무려 23살 차이
그렇게 의순공주는 도르곤의 6번째 복진이 됨

그런데 4달 뒤 청나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오는데...
효종의 북벌정책이 귀에 들어갔는지
갑자기 공주와 시녀가 못생겼다는 트집을 잡으며 또 여자를 요구함
하지만 도르곤은 처음에는 의순공주를 보고 매우 기뻐허며 송골매라는 별명을 지어줬기 때문에
조선을 기 죽이기 위해 트집을 잡은것일 가능성이 큼
효종은 도르곤의 의심을 풀기위해 또 청나라로 보낼 여인을 모집하고..
비변사등록의 기록에 의하면 '한낱 여자를 희생시켜 국난을 풀 수 있다면 사양할 바가 아니다'라고..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희생을 강요한 역사를 낱낱히 보여줌

그런데 두번째 청나라로 보내진 여인들이
갑자기 가던길을 돌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섭정왕 도르곤이 정치적 파워게임에서 밀려 숙청당해 죽어버린것
(표면상으로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지만.....)
청나라 황실은 도르곤의 시체를 꺼내 토막내는
부관참시까지 하며 완전히 역적으로 몰아버림
그리고 한순간에 역적의 첩이 되어버린 의순공주에게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치게 됨

의순공주는 역적의 재산으로 처분되어
도르곤의 부하였지만 청나라의 새로운 실세가 된
단친왕 보로에게 보내지게 됨
심지어 의순공주는 도르곤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음;;
이 소식을 듣고 의순공주를 만나려고 하는 조선의 대신들

의순공주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새 남편이 청나라의 실세라 눈도장 찍으려고;;
하지만 그 새남편 보로마저 1년만에 죽어버림
의순공주의 인생은 더욱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됨

의순공주 전에도 청나라에 끌려간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지만 간간히 조선으로 돌아온 여성들도 있었는데
환향녀..화냥년이라는 욕으로 쓰임 가족들마저 살아돌아온 딸, 며느리, 아내를 창피하고 더럽다며 집에서 쫓아냄

의순공주마저도 이런 분위기에서 예외가 아니었음
아버지 금림군은 청나라 황제를 찾아가 의순공주의 딱한 사정을 간청하며
결국 딸을 조선으로 데려오는데 성공함




의순공주가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은 의순공주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해댔다고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음
조정에서도 마음대로 딸을 조선으로 데려온 금림군 이개윤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함
자신들의 책임을 다 금림군과 의순공주 부녀에게 떠넘기려 한것



금림군 이개윤은 결국 모든 관직을 빼앗기고 평민이 되어 한양밖으로 쫓겨남
의순공주는 조선에 온 지 7년이 된 1662년
겨우 28살의 나이에 온갖 고생만하다 병으로 쓸쓸히 세상을 떠남…
아버지 이개윤도 딸이 죽고 1년만에 사망
그런데 의순공주가 죽고 난 뒤 만들어진 것이 있음
현재 의정부 주택가에는 공주의 무덤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관리도 되지않은
의순공주의 무덤이 있는데 족두리 무덤이라고 부른다고함
왜 족두리 무덤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가 기막힌데

백성들은 의순공주가 도르곤의 신부가 될 처지가 되자
오랑캐와 사느니 죽는편이 낫다며 강에 뛰어들었고
그 강에서 족두리만 떠올랐다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낸거였음
나라를 위해 청나라에 끌려갔다 온 의순공주를 숨기고 비난하며
정절을 지켰다며 거짓된 이야기를 만들어내
의순공주가 살아 돌아온 것을 죄인처럼 만들었던것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나라를 보전했던 조선이라는 나라,
남성의 무능함과 치욕의 증거를 지우려 했던 부끄러운 흔적 그자체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