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케이만군도와 국제학교-조세피난처가 삼킨 교육의 이름
비인가 국제학교의 급증, 교육청의 규제 회피, 학생 안전 및 교육 품질에 대한 행정 공백 등은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 세계 고소득층과 글로벌 기업들이 자산을 분산시키는 주요 목적지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케이만군도(Cayman Islands)다. 이곳은 법인세, 소득세, 자본이득세가 모두 ‘0’인 대표적인 조세피난처(tax haven)이며, 약 10만 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가 등록돼 있다. 놀랍게도 그 중 상당수가 교육 사업, 특히 국제학교 법인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교육의 외형을 한 세금 포탈
최근 한국, 아시아와 중동, 동유럽 등지에서는 외국계 국제학교가 ‘명문 교육’을 내세워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제학교는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필수 요건으로 외국인학교와 함께 외국인 정주 환경을 위해 필수적인 주재원, 외국 대사 자녀, 교포 등의 학제 연장을 위해 법으로 국제학교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에만 100여 개의 비인가 국제학교가 국제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법 운영되고 있다. 그 운영 구조를 들여다보면, 일부 학교는 케이만군도 등 조세 피난처에 등록된 모회사나 재단을 통해 학교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 사업의 다국적화가 아니라, 수익 회수의 비가시화를 목적으로 하는 복잡한 구조다.
보통 학생 1인당 연간 학비는 3만~5만 달러에 달하며, 일부 학교는 2,000명이 넘는 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수업료는 현지에서 걷지만, 수익은 프랜차이즈 라이센스 개념으로 매출 8~20%를 영리법인 또는 투자회사인 케이만군도 소재 법인으로 송금되어 본국의 세금도, 회계도 피한다. 즉, 조세 회피와 자산 은닉의 회로가 ‘국제학교’라는 외형을 통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사례의 민낯
국내에서도 수도권 A국제학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학교는 고급 외국 커리큘럼과 글로벌 대학 진학 실적을 홍보하며, 설립 당시 특정 지자체로부터 공공부지를 장기 임대 형태로 제공받았다. 그러나 교육청 인가를 받지 않은 비인가 상태였고, 학부모들은 학교 운영의 투명성이나 재정 구조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이 학교의 모기업은 케이만군도에 등록된 재단으로, 운영 법인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구조였다. 회계는 영문 기준으로 작성되어 세금 추징 및 연암 권한이 없어 국내 세무 당국의 접근이 어렵고, 수십억 원의 수업료가 외화로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세수는 0원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UAE, 헝가리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설립 과정에서 공공기관이나 정치인들이 자문 또는 홍보 명목으로 개입하며, 실제로는 외국 법인으로부터 리베이트성 자문료나 지분 혜택을 받는 ‘소리 없는 부패 구조’도 자주 언급된다.
교육의 공공성이 침식되는 순간
문제는 단순히 세금만이 아니다. 공식 외국인 교육기관의 법령에 의한 국제학교가 아닌 비인가 국제학교의 급증, 교육청과의 규제 회피, 학생 안전 및 교육 품질에 대한 행정 공백 등은
교육이라는 본질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글로벌 교육’이라는 말은 더 이상 교육 철학이 아닌 사업 전략이 되고 있고, ‘국제학교’라는 간판은 자산 회수의 포장지로 전락하고 있다.
제도적 대안이 시급하다
이러한 조세피난처 기반의 국제학교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제도적 접근이 시급하다.
①국제학교 운영 법인의 실소유주 및 해외 본사 공개 의무화
②비인가 국제학교에 감시, 정기 감사 및 수업료 외화 송금 감시 체계 마련
③공공부지 및 세제 혜택 제공 시 공공기여도 기준 강화
④조세피난처 기반 교육법인에 대한 국내 수익 과세 기준 정비
‘케이만군도’라는 지명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교실과 교복 뒤에 숨어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 실체를 직시하고, 조치해야 한다. 교육은 자산의 출구가 아니다. 공공의 미래를 만드는, 가장 순수한 투자여야 한다.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