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직, 김일성의 아버지
그는 반공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였다. 그가 만주에 있을 무렵 남만주에 공산주의 운동이 있었는데, 당시 일어난 적색 테러들 때문에 그는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들을 상당히 미워하였다. 실제로 김형직은 암암리에 병자를 치료하는 무면허 의술도 시행했는데(당시엔 의사들이 많이 부족해서 민간요법도 많이 쓰던 시절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반공 성향으로 인해 공산당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1926년에 31세라는 꽤나 젊은 나이에 원인 불명의 병으로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는 반면 공산주의자에게 테러를 당해 죽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이 정확한지는 학계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현재로서는 남에서든 북에서든 살해당했다는 설이 거의 정설로 전해져 있다.
아내인 강반석을 미국 선교사 넬슨 벨의 중매로 만났다는 야사가 있다. 참고로 넬슨 벨은 세계적인 복음 설교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인이다.
강반석은 여성들에게 독립운동을 하자고 가르친 것도 모자라 힘든 가정에서도 열심히 남편을 도왔다. 북한 당국이 후대에 조작하고 윤색하여 어디까지 진실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선국민회에 참가하고, 김형직이 공산주의자들한테 암살당한 후, 강반석이 조선으로 들어와 신간회에 민족주의자 측으로 참가한 것이 확인된다고 한다. 다만 확실한 사실인지 북한에서 꾸며낸 사실인지는 확인해 볼필요가 있다.
하여간 김형직은 살아 생전에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유명했으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 교인이었다. 김일성도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남리에 지어진 재림교회에 출석했고, 안식일학교에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