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ytimes.com/2025/04/10/opinion/education-smart-thinking-reading-tariffs.html
미국인들의 추론 능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여러 데이터를 아마 봤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세대부터 시작된다. 미국 교육 성취도 평가(NAEP) 시험에서 읽기 능력 기초 미달점을 받은 4학년 학생 비율은 지난 20년 동안 최고치를 기록했다. 8학년 학생의 기초 미달 비율 또한 시험 역사상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기초 미달 수준의 4학년 학생은 이야기의 사건 순서를 파악하지 못한다. 8학년 학생은 에세이의 주요 아이디어를 이해하거나 토론의 여러 측면을 구분하지 못한다.
국제 성인 역량 조사 프로그램(PIAAC)의 시험 결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만, 이번에는 더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의 수리 능력과 문해력은 2017년부터 감소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험 결과에 따르면 성인 문해력 시험 점수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하락했다.
OECD 교육기술국장인 안드레아스 슐라이허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의 30%는 10세 아동 수준의 읽기 능력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길에서 만나는 세 명 중 한 명이 간단한 것조차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놀랍기 그지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해력은 추론 능력의 근간이며, 복잡한 세상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의 원천이다. 은퇴한 장군 짐 매티스와 빙 웨스트는 "수백 권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기능적으로 문맹이며 무능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만으로는 충분히 넓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쓴 바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냇 말커스는 4학년과 8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점수 하락이 모든 영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상위권 학생들의 점수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점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은 하위권 학생들이다.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학생들의 성취도 격차는 비슷한 데이터를 가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미국에서 더 크다.
이러한 전반적인 하락에는 몇 가지 명백한 요인이 작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시험 점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낙오 아동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폐기했는데, 이 법은 시험과 성취도 격차 감소에 많은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하락세는 2012년경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주요 원인은 아마도 스크린(TV, 스마트폰, 비디오게임 등) 타임일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스크린 타임만이 아니다. 웹에서 정보를 적극적으로 검색하는 행위는 추론 능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틱톡이나 X를 수동적으로 스크롤하는 것은 언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부터 작업 기억, 집중력까지 모든 것을 약화시킨다. 이는 마치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과 같다.
필자의 가장 큰 걱정은 행동 변화가 문화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크린에 시간을 보내면서, 이전에는 우리 문화의 중심이었던 가치, 즉 '평생 지혜와 판단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다. 평생에 걸친 학교 밖 학습을 포함한 교육이 정말로 가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이러한 가치는 삶이 어려운 선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돈을 빌릴 것인가 등등. 가장 친한 친구가 와서 "내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 이혼해야 할까?"라고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결정을 내리려면 상황의 핵심을 파악하고, 가능한 결과를 예측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확률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읽고 쓰는 연습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훈련해야 한다. 요한 하리는 그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에서 "세상은 복잡하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천천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썼다. 책을 읽는 것은 페이스북 게시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글쓰기는 뒤죽박죽된 생각을 정리하여 설득력 있는 관점을 만들어내는 훈련이다.
과거에는 미국인들의 교육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지만, 지적 자기 계발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집집마다 백과사전을 구입하고, '이달의 책' 클럽에 가입하고, 훨씬 더 긴 집중력으로 긴 강의나 3시간짜리 링컨-더글러스 토론을 경청했다. 일단 마음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학습이 단순히 판단력을 키우기 위한 체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노력과 훈련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팬데믹 기간 동안 결석률이 급증했고, 그 이후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미국 부모들이 진정으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2022-23학년도에 학생의 26%가 만성 결석을 했을까?
국가교육통계센터(NCES)에 따르면 1984년에는 13세 학생의 35%가 거의 매일 재미로 책을 읽었다. 2023년에는 그 수가 14%로 감소했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의 능력 저하를 한탄하는 대학 교수들의 에세이가 넘쳐난다. 고등 교육 크로니클(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은 데이턴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안야 갈리 로버트슨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은 강의를 하고, 똑같은 책을 과제로 내주고, 똑같은 시험을 치른다. 몇 년 전에는 학생들이 잘 해냈지만,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애틀랜틱(The Atlantic)은 로즈 호로위츠의 '책을 읽을 수 없는 명문대 학생들(The Elite College Students Who Can’t Read Books)'이라는 에세이를 실었다. 한 교수는 과거 '죄와 벌'과 같은 책으로 활발한 교실 토론이 이루어졌던 것을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은 그런 수준의 독서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철학 교수인 트로이 졸리모어는 월러스(The Walrus)에 "나는 한때 학생들과 내가 함께 지적 탐구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 몇 학기 동안 그 믿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단순히 AI가 생성한 것처럼 보이는 과제의 양 때문만은 아니다. 학생이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읽거나, 심지어 수업의 단일 개념조차 잠시 생각해 본 흔적이 전혀 없는 리포트 뿐이다"고 썼다.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요즘 애들은"이라며 불평했지만, 이번에는 그 관찰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경험적 데이터가 있다.
사람들이 추론 능력이나 올바른 판단력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이렇게 나왔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정책을 다루어 왔고, 그중 일부는 지지했고 일부는 반대했다. 하지만 이 정책만큼 어리석은 정책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것을 옹호하는 일관된 논거도 없다. 경험적 증거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좌파, 우파, 중도 어느 쪽에서도 전문가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한다.
그것은 혼란스러움의 극치다. 트럼프 자신은 어리석음의 본질적인 특징, 즉 자기 만족감과 자신의 사고방식의 결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물론 그 접근 방식이 완전히 예측 가능한 대혼란으로 이어지자, 일관된 계획이 없었던 트럼프는 물러서고, 말을 바꾸고, 그의 참모들이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동안 즉흥적으로 순간의 압박에 반응했다.
이토록 어리석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의 무관심, 수십 년간의 책 한 권 읽지 않음, 수십 년간의 증거에 대한 무감각에 의존하는, 실로 평생의 업적이라 할 만하다.
호머 시대에는 사람들이 구전 문화 속에서 살았고, 그 후 인류는 서서히 문자를 사용하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제 우리는 스크린 문화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명이 지속되는 동안은 즐거웠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그는 정치, 사회, 문화적 트렌드에 관해 글을 쓴다.
*트럼프는 실제로 폭스뉴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류언론을 배척하는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인쇄 매체는 놔두고 CNN 등 방송 매체에만 '가짜 뉴스'라며 펄펄 뜀. 이유는 자신이 활자 매체(참모들이 올리는 뉴스 요약본 포함)를 일체 안 보고 TV와 소셜미디어만 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