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미권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작년 8월 이 같은 내용이 적힌 편지가 올라왔다. 사용자들은 영어를 쓰는데 편지 내용은 한글이었다. 이 편지 글쓴이는 “스웨덴 북부에 사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편지가 발견됐다. 번역을 도와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55년간 고이 간직했던 이 편지는 누렇게 색이 바랬지만, 찢어지거나 얼룩진 부분은 없었다. 이 글엔 4000건이 넘는 추천이 달렸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한 문장씩 영어로 번역해 200개가 넘는 댓글을 올렸다. 이들은 “할머니가 정말 훌륭한 분이다” “가슴이 뭉클하다. 다른 편지도 읽고 싶다”고 했다.
편지 발신자는 부산의 한 퇴직 교사 공삼현(66)씨다. 국민학교 2학년인 지난 1967년부터 5년간 스웨덴의 한 부부에게 후원을 받았다. 한국에서 약 7500㎞ 떨어진 북유럽 스웨덴의 한 부부가 크레파스, 스케치북, 동화책 등을 보낸 날이면 공씨는 친구들에게 “양친이 보내준 귀한 선물”이라며 온 동네를 돌며 자랑했다.
먼 나라 스웨덴 부부는 공씨에게 매달 교육비로 3000~4000원을 지원했다. 편지에 언급된 ‘4400원’을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13만원 정도다. 매달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돈을 받을 때마다 공씨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스웨덴으로 보냈다. 그런 편지가 30통이 넘는다. 공씨는 부부가 보내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도, 그 그림을 들고 찍은 사진도 보냈다.
‘스웨덴 부부’는 공씨가 다니던 학교에 세계 동화 전집도 보내줬다. 이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이 새로 생긴 ‘학급문고’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1959년 태어난 공씨는 그해 가을 사라호 태풍으로 집을 잃었다. 이 때문에 유년 시절 내내 정부가 마련해 준 임시 거처에서 살았다. 국민학생 시절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허다했다고 한다. 공씨는 “자선 병원에 가면 쌀밥에 소고기국을 공짜로 준다고 하니 늘 그곳을 찾아갔다”며 “그곳에서 스웨덴의 ‘양친’과 연결해 줬다”고 했다.
공씨가 스웨덴 양친과 소식이 끊긴 것은 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성년이 돼서는 ‘스웨덴 부모’ 이름마저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달 초 한국 소셜미디어에서 공씨의 편지가 외국 사이트에서 화제가 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본지가 지난 8일 공씨에게 전화해 ‘이 편지가 기억나시느냐’고 했다. 그는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돌아가셨습니꺼”라고 했다.
56년 전 ‘스웨덴 양친’에게 썼던 편지를 통화에서 읽었더니 공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얍니꺼. 학교에서 경시대회에 나갔던 것도, 친구들과 눈썰매를 탔던 일도 다 감사 편지에 담았었는데 부끄럽게도 50년 넘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때 받은 양친의 사진마저 잃어버렸네예….”
공씨는 스웨덴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앞으로 전교에서 1등을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는 실업계 학교인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부산대 사범대학에 합격해 부산에서 35년간 교사로 일했다. 지난 2022년 중학교 교감으로 퇴직할 때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은퇴한 뒤 지금은 부산의 한 교회에서 장로로 있다.
공씨는 “만나 뵐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스웨덴으로 기꺼이 달려가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이젠 만날 수가 없다”며 “먼 나라 양친에게 받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주위에 더 베풀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분들께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이래 쓸랍니다. 저를 이만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그분들의 아들, 딸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