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서대문구 연희동 싱크홀 사고 직후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지반침하 우려를 과학적으로 종합 분석하고 수치화한 지도”라며 연내 구축을 예고했다. 이후 지도를 만들었지만, 최근 강동구 사고를 계기로 지도 공개 요구가 나오자 “부동산 가격 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거부했다. “집값 때문에 위험 정보를 숨긴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9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서울시가 만들었다는 싱크홀 지도는 단순히 지하 시설을 서면 조사한 자료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질조사나 레이저 탐사 등은 빠져 있었다. 지도 이름도 ‘지반침하 안전지도’에서 ‘우선정비구역도’로 바뀌었다. 지하철역, 수도관, 가스 배관 등 지하 시설 밀집 지역을 우선 관리 대상으로 표시한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만든 우선정비구역도가 대형 싱크홀 예방에 실효성이 없는 자료라고 지적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하 정밀 조사 없이 단순히 시설 위치만 조사한 자료로 깊이가 10m에 이르는 싱크홀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없다”며 “서울시가 만든 자료는 기껏해야 수도관 누수 여부나 ‘포트홀’처럼 자동차 바퀴가 살짝 빠지는 작은 지반침하 가능성만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애초 3~4개월 만에 싱크홀 지도를 만든다는 게 불가능했다”며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서 200년 이상 만들어온 지도도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8일 “처음에는 땅속을 파악하고 싱크홀을 예측하는 지도를 만들고자 했지만, 현재 이를 구현할 기술이 없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며 “내부 참고 자료 수준이라 공개됐을 때 괜한 오해가 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자료를 부실하게 만든 탓에 공개를 꺼렸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자료가 미흡하더라도 우선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주민들이 지하 공사에 따른 안전대책을 요구하거나 부실 공사를 감시하려면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명예교수는 “지하 1~2m만 들여다보는 지표투과레이더(GPR) 조사를 넘어서 10m 이상 파악하는 지질조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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