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에서 38년째 양어장을 운영하는 최용태씨(74)의 양어장이 산불로 인해 피해를 본 모습. 최씨 제공
“이럴 때 도움받으려고 보험 든 거 아닙니까. 그런데 땡전 한 푼 못 준답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에서 38년째 양어장을 운영하는 최용태씨(74)가 9일 경향신문과 전화 통화에서 허탈하게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영덕을 덮치면서 운영하던 양식장이 잿더미가 됐다. 광어와 강도다리 19만마리가 이달 출하를 앞두고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강도다리 8만5620㎏, 광어는 약 2만㎏으로 피해액만 17억원에 달한다.
최씨가 재난에 대비해 들어둔 양식보험은 휴짓조각이 될 판이다. 이 보험은 태풍(강풍), 풍랑, 이상수온, 적조 등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본 경우 보상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화재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최씨는 보험접수조차 거부당했다.
최씨는 “강풍의 경우 10분간 평균 풍속이 초속 14m,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20m 이상의 바람이 불면 피해를 보상해준다는 약정이 있는데도 수협은 보험 접수도 안 했다”며 “강풍의 기준은 충족했지만, 물고기가 죽은 원인이 ‘화재’이니 보험금을 못 주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영덕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25.4m다. 태풍의 풍속이 초속 17m 이상이니, 이날 영덕에서는 태풍급 강풍이 불었던 셈이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지난달 25일 산불 피해로 폐허로 변해 있다. 성동훈 기자
최씨는 “태풍이 수조로 들어가 고기를 죽이는 게 아니다. 강풍, 낙뢰 등 으로 정전이 발생해 수조 안에 여러 장치가 마비되면서 고기가 폐사하는 것”이라며 “똑같이 불길이 수조에 들어가 고기를 죽인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해당 보험약관에는 ‘수협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으면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수협은 이날 강풍과 화재가 동시에 발생했지만, 어류 폐사가 화재로 인한 것으로 봤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이 해양수산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8일 기준 경북 영덕군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규모는 선박 30척, 어망 74개, 양식장 5곳 등 158억원으로 추정됐다.
이중 양식어류는 47만 마리(강도다리·은어)가 폐사해 약 3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양식보험에 가입된 2개 양식장은 보험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보험에 가입한 2곳에서 납부한 보험료(24년6월~25년5월)는 총 4890만원이다. 국비가 3030만원, 지방비 900만원, 자부담 960만원 등이다. 유례없는 재난 상황에서 세금이 투입된 보험이 제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수협중앙회는 “양식보험은 태풍 등 자연재해 사고를 담보하는 상품으로, 해상 화재는 자연재해로 보기 어려워 화재 사고는 약관상 보상하는 손해가 아니다”면서 “향후 상품을 개정할 때 양식보험 화재 담보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덕북부수협 관계자는 “유례없는 산불이었던 만큼 보상 기준이 애매했다”며 “강풍으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건의를 한 상태”라고 말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362267